조직이 몇 개인지, 무엇을 잘하는지, 돈이 어떻게 흐르는지, 그리고 왜 흐르지 않는지. 네 편의 논문을 쓰고 나서야 알았다. 나는 줄곧 같은 질문을 각도만 바꿔 묻고 있었다.윤상용2026
올해 6월, 정부는 관계부처 합동으로 「사회연대경제 발전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돌봄·주거·에너지·농어촌 먹거리를 4대 중점 육성분야로 못 박았고, 10년 넘게 국회에 머물던 「사회연대경제기본법」도 제정을 목전에 두고 있다. 사회연대경제라는 말이 이만큼 정책의 한복판에 놓인 적은 없었다.
그런데 기본법이 통과되고 예산이 배정되면, 곧바로 답해야 할 질문들이 있다. 어느 지역에 얼마를 줄 것인가. 어떤 조직을 잘하고 있다고 볼 것인가. 그 돈은 어떤 경로로 조직에 닿는가. 나는 이 질문들에 답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네 편의 논문을 썼다.
각각 다른 학회지에 다른 주제로 낸 글이었다. 그런데 네 편을 나란히 놓고 보니 한 줄기가 흐르고 있었다. 우리가 무언가를 세는 방식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정책을 결정한다는 것. 잘못 세면 잘못 쓴다. 아예 세지 않으면 아예 쓸 수 없다.
질문 하나
조직이 몇 개나 있는가
「사회연대경제 공급 구조와 기능 공백의 지역별 편차 연구」 · 경기·전남·경북 75개 시군
가장 기본적인 질문부터 시작했다. 경기 31개, 전남 22개, 경북 22개 시군의 인증 사회적기업과 사회적협동조합을 전부 세어보았다. 결과는 상식대로 나왔다. 고령화율이 높은 시군일수록 조직이 적었다. 세 지역 모두에서,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전남은 상관계수가 −0.804에 달했다.
"고령화가 심한 지역에 사회연대경제가 부족하다"는 결론을 쓰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가 걸렸다. 고령화율과 인구 규모의 상관계수를 재봤더니 −85.9%였다. 고령화율이 높은 시군은 거의 예외 없이 인구가 작은 시군이었다. 그렇다면 조직이 적은 진짜 이유는 고령화가 아니라 그냥 사람이 적어서일 수 있었다.
인구 규모를 통제하고 다시 계산했다. 부호가 뒤집혔다.
고령인구비율 계수 · 종속변수 SSE 조직 수
− 0.57 ~ − 0.80
단순 상관계수고령화가 심할수록 조직이 적다
인구 규모통제 →
+ 0.88
다중회귀 계수 (p=.013)인구가 같다면 오히려 조직이 더 많다
이것이 첫 번째 배움이었다. 지표 하나로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인구 대비 밀도(입지상계수)로 재면 또 다른 그림이 나왔다. 울진군 2.44, 청도군 2.03처럼 인구가 아주 적은 군에서 밀도가 높게 튀었다. 조직 몇 개만 있어도 인구로 나누면 밀도는 올라간다. 절대량은 취약한데 밀도는 높아 보이는 이중적 착시. 정부가 지정한 인구감소지역 33곳을 따로 떼어 검증해도 같은 패턴이 나왔다 — LQ는 1.32로 높고, 절대량은 14.8개로 비지정 지역(54.5개)의 4분의 1.
그리고 예상하지 못한 것이 하나 더 있었다. 조직의 사업내용 텍스트를 읽어 돌봄·복지 기능을 하는 조직을 따로 골라냈더니, 고령화율이 가장 높은 전남에서 돌봄형 비중이 가장 낮았다(11.4%). 경북은 17.0%였다. 함평군은 고령화율 53.6%인데 돌봄형 조직이 하나도 없었고, 구례군도 마찬가지였다. 수요가 크다는 사실과 그 수요에 대응하는 공급이 있다는 사실은 자동으로 연결되지 않았다.
조직 수를 세는 것만으로는 그 조직들이 지역의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이 지점에서 나는 다음 질문으로 밀려났다. 기능을 보려면, 무엇을 잘한다고 할 것인지부터 정해야 했다.
질문 둘
무엇을 잘한다고 할 것인가
「대구·경북 지역의 사회연대경제 조직에 대한 평가지표 체계 설계 연구」 · 재정정책논집
사회적 가치를 재는 도구는 이미 여럿 있다. 사회적가치지표(SVI), 사회적투자수익률(SROI), 사회성과인센티브(SPC). 다만 대부분 개별 기업 한 곳이 인증을 받거나 지원금을 탈 자격이 되는지를 가리려고 만들어졌다. 지자체가 지역 전체의 예산을 나눌 때 쓸 잣대는 아니었다.
그래서 평가표를 두 겹으로 설계했다. 모든 조직에 똑같이 적용해 서로 비교할 수 있게 하는 공통지표 18개, 그리고 업종의 성격을 반영해 각자 잘하는 것을 인정하는 업종특화지표 4개씩. 돌봄의 핵심 가치는 서비스 접근성과 질에 있고 에너지의 핵심 가치는 자립도와 온실가스 감축에 있으니, 같은 잣대 하나로 재면 어느 한쪽이 구조적으로 손해를 본다. 최종 점수는 둘을 7 대 3으로 섞었다.
각 항목의 중요도는 이해관계자 21명에게 물었다. 지자체 담당자, 중간지원조직, 현장 종사자, 지역주민 네 집단이 항목을 둘씩 짝지어 비교하는 방식(AHP)이었다. 가장 흥미로운 결과는 집단마다 답이 갈렸다는 것이다.
최상위 계층 가중치 · 경제적 지속가능성 대 사회적 가치창출
0.580
공급자가 경제적 지속가능성에실은 무게
vs
0.650
주민이 사회적 가치창출에실은 무게
사업을 직접 운영하는 사람은 매출과 재무 자립을 중시했고, 서비스를 받는 사람은 체감되는 가치를 중시했다. 같은 조직을 봐도 서 있는 자리에 따라 평가의 잣대가 체계적으로 달라진다. 지표는 중립적이지 않다. 누구에게 물어 만들었느냐가 곧 그 지표의 성격이 된다.
다만 한 항목에서는 네 집단이 일치했다. 18개 세부지표 중 취약계층지원이 압도적 1위(0.089)였다. 모두가 사회연대경제의 존재 이유를 취약계층을 실제로 돕는 기능에서 찾고 있었다. 반대로 관련기관협력(0.035)과 투명한 관리(0.037) 같은 절차·대외협력 항목은 뒤로 밀렸다.
이 연구의 21명은 정식 조사가 아니라 방법론이 돌아가는지 확인하는 파일럿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숫자들을 결과가 아니라 이런 절차로 숫자를 만들 수 있다는 설계도로 읽어달라고 썼다. 그런데 설계도를 그리고 나니 다음이 궁금해졌다. 이 잣대로 잘한다고 판정된 조직에, 실제로 돈이 가는가?
질문 셋
그 조직에 돈이 가는가
「사회연대경제 금융지원체계의 설계: 대구와 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내가 사는 지역부터 들여다봤다. 대구·경북에는 사회연대경제 조직이 2,180개 있고 연간 5,574억 원의 매출과 4,412명의 고용을 만든다. 지원센터도 여럿이다. 그런데 조례에 근거해 조성·운영되는 지자체 사회적경제기금은 한 곳도 없었다.
돈이 조직에 닿기까지의 경로를 네 개 층으로 나눠 보았다. 돈을 모으는 재원조성, 그 돈을 개별 조직이 빌릴 수 있는 신용으로 바꾸는 신용보강, 실제로 집행하는 자금유통, 조직을 맞는 채널로 안내하는 수요자접점. 층으로 나누자 비로소 어디가 막혔는지 보였다.
1층 재원조성 — 공백. 공식 기금이 없고, 지역 사회적경제인들이 스스로 만든 민간 자조기금(대구사회가치금융, 누적 7억 7,160만 원)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서울 913억, 경기 238억은 물론 인접한 경남 10억과 비교해도 작다.2층 신용보강 — 있지만 우리 것은 아니다. 특례보증이 있으나 전국 17개 지역신보가 같은 조건으로 제공하는 표준 제도다. 지자체의 정책 의지가 개입할 여지 자체가 없는 층이다.3층 자금유통 — 공백. 경남·강원·부산에는 지역 임팩트펀드가 있으나 대구·경북에는 없다.4층 수요자접점 — 비어 있는 게 아니라 붐빈다. 광역 지원센터, 사회적기업지원센터, 기초지자체 창업지원센터, 그리고 1990년대 생협·대안교육 운동에서 출발해 30년간 자생적으로 성장한 민간 네트워크가 동시에 활동한다.
나는 이것이 재정이 어려워서 생긴 불가피한 결과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17개 광역시·도를 놓고 재정자립도·고령인구비율·단체장 정당성향만으로 기금 설치 확률을 계산했다. 대구는 37.9%, 경북은 35.0%가 나왔다. 실제 기금 보유 지역 비율(35.3%)과 거의 같았다. 구조적으로 볼 때 우리 지역이 특별히 억울한 처지는 아니라는 뜻이었다.
정작 눈에 띈 것은 예측이 빗나간 지역들이었다. 경남(25.9%)과 충남(25.7%)은 대구·경북보다 예측확률이 낮은데도 기금을 설치했고, 전남은 58.2%로 세 번째로 높은데도 기금이 없었다. 기금의 존재는 재정 여건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정책적 선택이 개입하는 여지가 분명히 있다.
그런데 4층의 그림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기관이 부족한 게 아니라 서로 다른 시기에 서로 다른 논리로 형성된 조직들이 같은 정책 공간에서 경쟁하고 있는 상태였다. 특히 실행 기능으로 출발한 민간 네트워크가 최근에는 정책연구 용역까지 수행하고 있었다. 사업을 하는 주체가 그 사업을 평가하는 연구까지 맡게 되는 구조. 여기서 네 번째 질문이 나왔다.
질문 넷
왜 돈이 흐르지 않는가
「사회연대경제 조사·연구 인프라 강화를 통한 금융연계 기반 조성 방안 연구」
기금이 생기면 문제가 풀릴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기금이 있는 지역에서도 상당 부분이 예치·예탁 상태에 머물러 실제 융자·투자로 이어지지 못한다. 돈의 양보다 앞서는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그것이 정보다.
금융에서 정보비대칭은 흔한 문제다. 은행이 차입자의 위험을 관찰하기 어려우면 금리를 올리기보다 아예 대출을 줄이는 쪽을 택한다는 것이 신용할당 이론의 요지다. 그런데 이 이론이 전제하는 비대칭은 "갚을 수 있나"라는 한 겹이다. 사회연대경제 조직에는 한 겹이 더 있다. "정말 사회적 가치를 만드나". 지역사회 기여도, 취약계층 고용, 돌봄서비스 제공은 전통적 금융정보로 포착되지 않는다. 나는 이것을 이중적 정보비대칭이라 불렀다.
사회적 가치는 경제학적으로 정보재의 성격을 갖는다. 외부에서 직접 관찰하기 어렵고, 조직 스스로 보고하는 정보에 의존하며, 표준화된 측정 기준이 없으면 조직 간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러니 재무정보의 비대칭보다 오히려 더 심각한 검증 문제를 낳는다. 그리고 이 비대칭이 풀리지 않으면 심사비용이 높아지고, 담보 중심 관행이 굳어지고, 결국 정부 재정지원에 대한 의존이 고착된다.
그래서 지역마다 실태조사·성과평가·정책연구·금융연계·투자컨설팅을 결합한 조사연구기관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전국 17개 시·도의 조사·연구 인프라를 유형화해 보니 선도형은 3곳(서울·충남·전북)뿐이었고, 공백형이 6곳이었다. 경북도 공백형이었다.
분석에서 하나 얻어걸린 발견이 있다. 순서형 모형이 추정한 문턱값이다.
유형 이행의 문턱값
+11.377
공백형 → 중간형첫 문턱
그다음은
+2.668
중간형 → 선도형훨씬 낮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최소한의 인프라를 갖추기까지가 어렵지, 일단 갖추고 나면 그다음 단계는 훨씬 수월하다. 경로의존성이 작동한다는 뜻이고, 정책적으로는 초기 진입 단계에 대한 지원이 가장 중요하다는 결론이 된다.
다만 여기에 함정이 있다. 조사·연구 기능을 새로 만들면, 이미 실행 기능을 장악한 조직이 그것을 흡수하려 들 유인이 생긴다. 조직론에는 이 현상을 설명하는 개념이 둘 있다. 조직이 원래 임무의 범위를 점진적으로 넓혀 가는 미션크리프, 그리고 평가하는 쪽이 평가받는 쪽에 종속되는 포획. 누가 감시자를 감시하는가라는 오래된 문제의 변주다.
그래서 나는 기능 분리를 조직도상의 구분이 아니라 예산 계통·인사 체계·사무공간까지의 실질적 독립성으로 정의하고, 운영위원회에서 실행형 위탁사업 수행기관 소속 인사가 3분의 1을 넘지 못하게 하는 것 같은 구체적 장치를 제안했다. 시범지역 델파이 조사에서 중간지원조직 실무자 두 분이 서면 의견으로 같은 말을 했다. 독립성 확보가 실제 운영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다.
네 편이 만난 자리
숫자를 늘리는 정책에서구조를 설계하는 정책으로
네 편을 나란히 놓으니 하나의 순환이 보였다. 조사·연구 인프라가 있어야 조직의 성과를 잴 수 있고, 잴 수 있어야 재정을 배분할 근거가 생기고, 돈이 흘러야 지역에 필요한 기능이 자라고, 기능이 자라야 비로소 셀 만한 것이 생긴다. 그리고 지금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이 순환의 어느 고리도 제대로 걸려 있지 않다.
네 편의 결론도 결국 같은 방향을 가리켰다. 조직 수를 늘리는 데 초점을 맞추는 정책은 이제 한계에 도달했다는 것. 공급구조 연구는 절대량·밀도·기능을 함께 봐야 한다고 말했고, 평가지표 연구는 업종마다 다른 잣대가 필요하다고 말했고, 금융지원체계 연구는 층위별 균형과 연계가 문제라고 말했고, 조사·연구 인프라 연구는 그 모든 것의 전제인 정보를 만들자고 말했다. 표현은 달라도 요구는 하나다. 양에서 구조로.
"인구감소지역에 사회연대경제 조직을 얼마나 많이 만들 것인가"에서 "어떤 지역에, 어떤 기능의 조직이, 어느 정도 규모로 존재해야 주민의 사회적 필요를 충족할 수 있는가"로.
솔직히 말하면 네 편 모두 확정적인 답을 내놓지는 못했다. 17개 광역시·도는 통계적으로 매우 작은 표본이고, AHP 조사의 21명과 델파이의 10명은 방법론 검증용 파일럿이었으며, 대구·경북과 경기·전남·경북이라는 지역 선정에도 특수성이 있다. 횡단면 자료로는 인과관계를 증명할 수 없다. 나는 이 한계들을 논문마다 명시했고, 여기서도 다시 적어둔다.
그럼에도 이 네 편을 지금 내놓는 이유가 있다. 기본법이 제정되면 대규모 정책사업 발주와 지역 단위 실행체계 구축이 본격화된다. 그때 "어떻게 나눌 것인가"를 묻기 시작하면 이미 늦다. 나눌 방식은 나눌 돈이 생기기 전에 설계되어야 하고, 그 설계는 지역을 무엇으로 어떻게 세었느냐 위에 세워진다.
네 번 세어보고 알게 된 것은 결국 이것이다. 세는 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정책은 계속 같은 자리를 헛짚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