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국제 규범의 성립
2021년 12월부터 2025년까지 약 4년 사이에 사회연대경제는 노동·정책·개발이라는 세 축에서 동시에 국제 규범을 얻었다.
그림 11. 사회연대경제 국제 규범화의 경과
표 12. 국제 규범의 구성
규범 | 채택 시점 | 성격 | 핵심 내용 |
EU 사회적경제 행동계획 | 2021.12 | EU 집행위 정책 문서 | 조건 조성·기회 확대·인식 제고 |
ILO 결의 | 2022.6.10 | 노사정 3자 합의 | 최초의 국제 합의 정의 |
OECD 권고 | 2022.6.10 | 회원국 정책 기준 | 최초의 국제 정책 기준, 이행 점검 |
UN 총회 결의 A/RES/77/281 | 2023.4.18 | 총회 결의(비구속) | SDG 기여 인정, 법·재정·조달 지원 촉구 |
UN 후속 결의 · IYC 선포 | 2024 | 이행 강화 | 2025년 국제협동조합의 해 선포 |
이 규범들이 2022년에 집중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사회연대경제 조직이 돌봄·식품·지역 고용에서 수행한 역할이 국제적으로 재평가된 것이 직접적 계기였다. 규범은 대개 위기 뒤에 만들어진다.
구속력이 없는 규범이라도 국내 정치에서는 강력한 자원이 된다. “국제노동총회가 노사정 합의로 채택한 정의”라는 사실은 국내 입법 논의에서 반대를 넘어서는 근거가 되며, 정의를 새로 만들 필요 없이 국제 정의를 준용하면 국제 비교도 가능해진다. 통계청이 위성계정을 구축할 근거가 되기도 하고, 공적개발원조 사업에서 사회연대경제를 명시적 분야로 제안할 수도 있다.
3.2 각국의 입법 방식
국제 규범보다 먼저 움직인 나라들이 있다. 스페인은 2011년 「사회적경제법」을 제정하면서 협동조합·공제·재단·결사체·노동자소유기업을 목록으로 열거하는 방식을 택했다. 프랑스는 2014년 「사회연대경제법」에서 전통적 조직에 더해 원칙을 충족하는 상법상 회사까지 포함하는 포용적 정의를 채택했다. 캐나다 퀘벡은 2013년 원칙 중심 정의를 담은 법을 제정했으며, 에콰도르는 2011년 「대중연대경제법」을 헌법적 이념(부엔 비비르)과 결합시켰다.
핵심적인 설계 선택은 열거형이냐 원칙형이냐이다. 열거형은 법인격 목록으로 대상을 특정하므로 명확하고 집행이 쉽지만, 목록 밖의 새로운 형태를 배제한다. 원칙형은 유연하지만 판정 기준과 심사 비용이 필요하다. 조직 생태계가 안정적인 나라에는 전자가, 새로운 형태가 계속 생겨나는 나라에는 후자가 적합하다.
EU 사례가 보여주는 또 하나의 교훈은 “법 하나로는 부족하다”는 점이다. 행동계획(무엇을 할 것인가), 권고(회원국은 어떤 여건을 만들 것인가), 재정 프로그램(어떤 돈으로)이 세트로 움직인다. 기본법 제정만을 목표로 삼는 정책 제안은 대개 시행 단계에서 좌초한다.
3.3 정책 수단의 여섯 유형
“사회연대경제를 지원한다”는 말은 너무 막연하다. 여섯 개의 수단으로 나누어야 무엇이 빠져 있는지 보인다.
① 인정은 법인격 신설, 인증·라벨, 등록부 운영으로 조직의 존재를 법적으로 확인하는 가장 기초적인 단계다. ② 재정은 보조금, 조세 감면, 사회보험료 지원으로 효과가 빠르지만 의존을 낳기 쉽다. ③ 시장은 공공조달의 사회적 가치 조항과 우선구매로, 지속가능성에 가장 직접적으로 기여한다. ④ 금융은 사회적금융 기금과 보증, 임팩트 투자를 말하며, 제1부의 보증 메커니즘이 여기서 다시 등장한다. ⑤ 역량은 중간지원조직과 교육·컨설팅이며, ⑥ 통계는 위성계정과 사업체 조사로, 이것이 없으면 다른 다섯 수단의 효과를 증명할 수 없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①과 ②는 갖춰져 있고 ③·④·⑥이 비어 있다. 그런데 ③이 없으면 ②는 결국 종료된다. 재정 지원은 언젠가 끝나지만 조달 시장은 계속되기 때문이다.
【학술 쟁점 10】 사회적기업 — 유럽 개념과 미국 개념은 같은 것인가
논점 — “사회적기업”이라는 용어가 대서양 양안에서 같은 대상을 가리키는가.
입장 A (수렴론) — 두 전통 모두 사회적 목적과 시장 활동의 결합을 다루며, 최근에는 상호 참조가 늘어 개념이 수렴하고 있다는 견해다.
입장 B (분기론) — 드푸르니와 니센스(Defourny & Nyssens, 2010)는 유럽의 EMES 접근이 집합적 동학과 참여적 지배구조를 필수 요건으로 삼는 반면, 미국의 접근은 개인 기업가의 혁신과 수익 창출을 강조한다고 정리했다. 유럽에서는 협동조합적 뿌리가, 미국에서는 비영리조직의 수익사업 전환이 배경이다. 커린(Kerlin, 2006)도 지원 환경과 자금 구조의 차이를 지적했다.
증거의 상태 — 각국 법제도를 비교하면 분기론이 더 설득력 있다. 유럽 국가들은 법인격이나 인증 요건에 지배구조 조항을 포함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 영미권은 사회적 목적의 선언과 이윤 사용 제약에 초점을 둔다.
한국에 대한 함의 — 한국의 사회적기업 인증제는 요건에 민주적 지배구조 조항을 포함하고 있으나, 실제 평가에서 그 비중은 크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 이는 제도의 형식은 유럽형, 운영은 영미형에 가까운 혼합 상태로 해석될 수 있다. 어느 쪽으로 정렬할 것인지가 향후 입법의 쟁점이 된다.
3.4 한국의 제도 구조
한국은 기본법 없이 개별법으로 구성된 드문 사례다.
표 13. 한국의 사회적경제 관련 제도
제도 | 근거 · 시점 | 소관 부처 | 성격 |
사회적기업 | 사회적기업 육성법(2007 시행) | 고용노동부 | 인증제 — 요건 심사 후 인증 |
협동조합 | 협동조합 기본법(2012.12 시행) | 기획재정부 | 설립 자유화 — 5인 이상 신고 설립 |
마을기업 | 행정 지침(2011~) | 행정안전부 | 지역공동체 기반 사업체 |
자활기업 |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계열 | 보건복지부 | 수급자·차상위층 자립 지원과 결합 |
사회적경제기본법 | 2014년 최초 발의 이후 계류 | — | 10년 넘게 미제정 |
이 구조는 네 가지 문제를 낳는다. 무엇이 사회적경제 조직인지 통일된 기준이 없어 통계 산출이 어렵고, 한 조직이 여러 인증을 받거나 어느 것에도 해당하지 않는 중복과 사각이 발생하며, 부처별로 지원 방식과 평가 기준이 달라 정책 일관성이 떨어지고, 공공조달의 사회적 가치 조항이 분산되어 실효성이 낮다.
기본법 제정을 둘러싼 논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찬성 측은 통일된 정의가 있어야 통계와 정책 평가가 가능하고, 부처 분산으로 인한 중복과 사각을 조정할 근거가 필요하며, 국제 규범에 대응하는 국내 이행 체계가 된다고 본다. 신중론은 기본법 없이도 협동조합 수가 크게 늘었다는 점, 국가 인증·지원 체계가 사회연대경제를 정부 사업 수행기관으로 만들 수 있다는 점, 정의를 법으로 고정하면 새로운 형태가 배제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결국 물어야 할 것은 “기본법이 무엇을 위한 것인가”이다. 지원인가, 정체성인가, 통계인가, 아니면 정치적 승인인가. 목적이 다르면 필요한 조문도 달라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