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영역을 함께 보는 이유
금융·주거·모빌리티·관광·IT는 성격이 다른 분야처럼 보이지만, SSE 관점에서는 하나의 공통 질문을 공유합니다. 시장이 공급을 포기한 곳에서 누가 필수 서비스를 제공하는가.
앞의 세 영역(금융·주거·IT)은 이미 다뤘으니 새로운 각도만 짚고, 모빌리티와 관광을 충실히 보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다섯을 관통하는 구조를 정리하겠습니다.
금융 — 부채라는 남은 각도
금융협동조합, 사회적금융, 공제, 보증은 앞서 다뤘습니다. 덜 다룬 것이 부채 문제입니다.
금융 배제는 접근하지 못하는 문제만이 아니라 잘못된 조건으로 접근한 뒤 갚지 못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SSE의 역할은 공급이 아니라 회복입니다.
주빌리은행이 부실채권을 매입해 소각한 실험, 서울시 금융복지상담센터가 채무조정과 금융교육을 제공하는 방식이 그 형태입니다. 국제적으로는 신용조합이 고금리 단기대출(payday lending)의 대안 역할을 해왔고요.
앞서 다룬 관계형금융이 대출 이전 단계의 이야기라면, 이는 대출 이후 단계입니다.
주거 — 집수리라는 접점
사회주택과 공동체주택은 앞서 다뤘습니다. 여기서 덧붙일 것은 집수리입니다.
집수리 사회적기업은 세 가지를 동시에 해결합니다. 노후 주택의 주거 질을 개선하고, 단열 공사로 에너지 빈곤을 줄이며, 노동집약적이라 취약계층 고용을 만듭니다.
앞서 순환경제·에너지·WISE를 각각 다뤘는데, 집수리는 셋이 한 사업에서 만나는 드문 지점입니다. 그리고 고령가구가 많은 농촌에서 특히 수요가 큽니다.
모빌리티 — 두 갈래
이동은 다른 모든 접근성의 전제입니다. 은행에 가려면, 병원에 가려면, 장을 보려면 이동해야 합니다. 그래서 교통이 끊기면 다른 배제가 연쇄적으로 심화됩니다.
첫 번째 갈래는 이동권 보장입니다.
농어촌에서 대중교통이 사라진 자리를 100원 택시(행복택시) 와 수요응답형 교통(DRT) 이 메우고 있습니다. 노선버스 대신 주민이 부르면 오는 방식이죠. 국토교통부가 2025년 12월 DRT 도입·운영 가이드라인을 냈고, 최근에는 인제·진천·봉화·의령·하동 5개 군에서 AI가 버스·택시·DRT를 실시간 연계하는 '부르면 오는 교통' 실증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두 번째 갈래는 노동자 소유입니다.
쿱택시가 대표 사례입니다. 2015년 국내 최초의 우리사주형 협동조합인 한국택시협동조합이 출범했고, 사납금 제도를 없애고 완전월급제를 도입하는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기사가 조합원이자 소유자가 되어 이익이 고루 분배되는 구조죠.
규모가 생각보다 커졌습니다. 쿱모빌리티는 서울·포항·경주·대전·경산·춘천·원주·전주 등에서 약 3,500대의 협동조합택시를 설립했고 1만 대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앞서 노동자협동조합을 다루며 한국에서 사례가 드물다고 했는데, 택시가 예외입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사납금제가 만든 문제가 워낙 명확했고, 몬드라곤식 노동자 소유가 그에 대한 직접적 답이었기 때문입니다. 유럽에서는 카셰어링 협동조합이 같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관광 — 세 가지 다른 의미
관광에서 SSE는 세 층위로 나타납니다.
공정여행은 여행 지출이 지역에 남게 하는 것입니다. 앞서 다룬 누출과 승수의 관광판이죠. 대형 리조트와 패키지 관광은 수익 대부분이 역외로 나가지만, 지역 숙박과 지역 식당은 지역에 남습니다.
사회적 관광(social tourism) 은 유럽 개념으로, 여행을 권리로 봅니다. 저소득층·장애인·고령자의 여행 접근권을 보장하는 것이죠. 프랑스의 휴가수표 제도가 대표적이고, 한국에는 근로자 휴가지원사업과 문화누리카드가 대응합니다.
커뮤니티 기반 관광(CBT) 은 개발협력 도구입니다. 지역 주민이 소유하고 운영하는 관광으로, 개도국 농촌 소득 창출 수단으로 널리 쓰입니다. 한국에서는 관광두레(2013~)가 주민사업체를 육성하는 형태로 운영되고, 농촌체험휴양마을이 앞서 다룬 6차산업과 이어집니다.
그리고 여기서 선생님의 ODA 연구와 직접 만납니다. 2022년 「빅데이터에 기반한 공적개발원조에 관한 연구」에서 키르기스스탄 관광산업의 부가가치 제고를 위한 상권분석시스템 구축을 제안하셨습니다. 그것이 정확히 CBT의 정보 인프라입니다.
주의할 점은 오버투어리즘입니다. 관광이 성공하면 임대료가 오르고 주민이 밀려납니다. 앞서 다룬 도시재생의 젠트리피케이션과 같은 구조이고, 여기서도 "성공의 가치를 누가 가져가는가"가 문제가 됩니다.
IT플랫폼 — 디지털 포용이라는 각도
플랫폼협동조합과 데이터 커먼즈는 앞서 다뤘습니다. 덧붙일 것은 접근의 문제입니다.
앞서 상호금융이 고령층 디지털 격차 때문에 오히려 지점을 늘리고 있다고 했습니다. 디지털 전환이 진행될수록 배제되는 사람이 생기고, 그 배제는 다른 모든 서비스 접근을 차단합니다. 은행 앱을 못 쓰면 은행에 갈 수밖에 없고, 배차 앱을 못 쓰면 DRT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
즉 디지털 포용은 독립된 문제가 아니라 다른 모든 포용의 전제 조건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관통하는 구조 — 사막의 중첩
다섯 영역을 함께 놓으면 하나의 패턴이 드러납니다.
영역 | 배제의 이름 |
금융 | 금융 사막(banking desert) |
먹거리 | 먹거리 사막(food desert) |
교통 | 교통 사막(transport desert) |
의료 | 의료 취약지 |
디지털 | 정보 격차 |
메커니즘이 동일합니다. 인구 감소 → 수익성 하락 → 서비스 철수 → 정주 여건 악화 → 인구 감소. 앞서 지역소멸을 다루며 짚은 악순환이 모든 영역에서 같은 형태로 작동합니다.
그리고 이 사막들은 같은 곳에 겹칩니다. 은행이 없는 곳에는 대개 신선식품 매장도 없고 버스도 끊깁니다. 개별 영역의 문제가 아니라 복합적 결핍입니다.
그런데 정책은 부처별로 따로 대응합니다. 금융은 금융위, 먹거리는 농식품부, 교통은 국토부, 의료는 복지부. 앞서 여러 번 본 부처 분절이 여기서 가장 실질적인 비용을 낳습니다.
생각해 볼 점
첫째 — 복합 접근성 지수가 가장 큰 기회입니다.
지금까지 여러 차례 개별 지수를 제안드렸는데, 이제 하나로 묶을 수 있습니다.
이미 갖고 계신 시군구 12년 패널에 금융기관 지점, 신선식품 매장, 대중교통 서비스, 의료기관, 디지털 접근성을 결합하면 필수 서비스 복합 접근성 지수가 만들어집니다.
이것이 금융포용지수의 자연스러운 확장입니다. 금융포용을 단독으로 보면 금융 문제이지만, 다른 접근성과 함께 보면 지역 생존 가능성의 지표가 됩니다. 그리고 앞서 다룬 생활인구를 분모로 쓰면 방법론적 기여까지 더해집니다.
국제적으로도 이런 통합 지수는 드뭅니다. 개별 사막 연구는 많지만 중첩을 측정한 것은 적습니다.
둘째, 쿱택시가 노동자협동조합의 국내 실증 사례입니다. 3,500대 규모에 여러 지역에 분포하고, 사납금제 회사와 협동조합이 같은 시장에서 경쟁합니다. 소유구조가 성과와 노동조건에 미치는 영향을 비교할 수 있는 드문 조건이고, 앞서 다룬 "경기 충격에 고용 대신 임금을 조정하는가"라는 국제 문헌의 명제를 한국에서 검증할 수 있습니다.
경산에도 쿱택시 법인이 있으니 접근성도 좋습니다.
셋째, DRT가 비용-편익 분석의 대상입니다. 100원 택시와 DRT는 적자를 전제로 운영되는 서비스입니다. 그렇다면 얼마의 재정 부담이 정당화되는가. 앞서 보증기금의 재정 지속가능성을 다루신 방식 — 편익과 재정 부담의 임계를 계산하는 접근 — 이 그대로 적용됩니다.
넷째, 관광 ODA가 이미 시작된 연구입니다. 2022년 키르기스스탄 상권분석시스템 제안을 CBT 프레임으로 재정리하면 국제 관광개발 문헌에 접속합니다. 그리고 PSPS 동문 국가 상당수가 관광을 주요 산업으로 삼고 있어, PAP 문항에 관광 부문 SSE를 넣을 근거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