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경제 / 연대경제 / 제3섹터 / 비영리섹터의 경계
이 개념들이 헷갈리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서로 다른 나라에서, 서로 다른 시기에, 서로 다른 목적으로 만들어진 말들이 뒤늦게 한자리에 모였기 때문입니다. 같은 대상을 놓고 경쟁하는 정의가 아니라, 애초에 각자 다른 질문에 답하려던 개념들입니다.
네 개념의 출신 성분
어디서 | 언제 | 무엇으로 정의하나 | |
제3섹터 | 미국 | 1970년대 | 국가도 시장도 아닌 것 (잔여적) |
비영리섹터 | 미국 | 1990년대 | 이윤을 나누지 않는 조직 (구조·운영) |
사회적경제 | 프랑스·벨기에 | 19세기~1980년 | 법적 형태의 목록 (협동조합·공제·결사체·재단) |
연대경제 | 프랑스·중남미 | 1980~90년대 | 호혜성에 기반한 실천과 운동 |
제3섹터는 가장 느슨합니다. "정부도 기업도 아닌 나머지"라는 뜻이라 무엇인지가 아니라 무엇이 아닌지로만 정의됩니다. 학술적으로는 거의 쓰이지 않고 편의상 부르는 이름에 가깝습니다.
비영리섹터는 존스홉킨스 비교연구(Salamon·Anheier)가 만든 다섯 요건 — 조직성, 민간성, 이윤 비배분, 자율성, 자발성 — 으로 정의됩니다. 미국 세법(501(c)(3))과 자선 전통이 배경입니다.
사회적경제는 프랑스어 économie sociale의 번역입니다. 19세기 노동자 결사 전통에서 나왔고, 1980년 사회적경제 헌장으로 정식화됐습니다. 조직이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법적 형태를 가졌느냐로 정의합니다.
연대경제는 사회적경제가 제도화되면서 운동성을 잃었다는 내부 비판에서 출발했습니다. 중남미에서 특히 강한데, 폴라니의 호혜성 개념을 끌어와 시장·재분배와 나란히 놓고, 지역화폐·공정무역·노동자 회수기업 같은 새로운 실천을 강조합니다.
경계를 가르는 세 가지 쟁점
쟁점 1 — 협동조합은 비영리인가? 이게 가장 결정적입니다.
비영리섹터 정의는 이윤 비배분이 절대 조건이라 협동조합과 공제조합을 배제합니다. 조합원에게 배당하니까요. 반면 사회적경제는 제한적 배분을 허용하므로 포함합니다. 영미권 문헌에서 협동조합이 잘 안 보이고, 유럽 문헌에서는 중심에 있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같은 조직을 놓고 대서양 양편이 다르게 세고 있는 겁니다.
쟁점 2 — 법적 형태로 볼 것인가, 실질로 볼 것인가?
사회적경제 정의의 약점은 형해화된 조직도 자동으로 포함된다는 점입니다. 대형 농협이나 거대 공제조합이 법적으로는 협동조합이지만 실질은 일반 기업과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가 그렇습니다. 반대로 실질 기준(사회적 목적, 민주적 거버넌스)으로 가면 판정이 자의적이 되고 국제 비교가 어려워집니다.
쟁점 3 — 공식 조직만 셀 것인가?
비영리·사회적경제는 등록된 법인을 전제합니다. 연대경제는 비공식 자조집단, 계, 마을 저축조직까지 포함합니다. 개도국에서는 이 차이가 결정적입니다. 공식 등록 조직만 세면 실제 활동의 상당 부분이 통계에서 사라집니다.
사회연대경제(SSE)는 왜 등장했나
대타협의 산물입니다. 어느 정의도 국제적 합의를 얻지 못하는 상황에서, UNRISD와 ILO가 양쪽을 다 담는 우산 개념으로 밀었습니다. 2022년 ILO 정의가 협동조합·결사체·공제조합·재단·사회적기업·자조집단을 모두 나열한 건 이 타협의 결과입니다.
대가도 분명합니다. 범위가 넓어진 만큼 측정과 비교가 어려워졌습니다. UN 브리프가 정책과제로 '위성계정 등 통계체계 구축'을 꼽은 것 자체가 이 문제의 자백입니다.
한국의 특수한 사정
한국의 '사회적경제'는 학술 개념으로 수입된 게 아니라 정책 범주로 형성됐습니다. 2007년 사회적기업육성법, 2012년 협동조합기본법을 거치며 사회적기업·협동조합·마을기업·자활기업의 묶음으로 굳어졌고, 사회적경제기본법은 계속 무산됐습니다.
새마을금고·신협·농협은 국제 기준으로는 명백히 SSE — 그것도 브리프가 독립 유형으로 잡은 Financing SSEOEs — 인데, 국내 사회적경제 정책 담론에서는 사실상 빠져 있습니다. 별도 근거법, 별도 감독체계, 별도 학술 커뮤니티로 갈라져 있기 때문입니다.
왜 한국에서는 최대 규모의 협동조합 금융이 '사회적경제'로 셈해지지 않는가. 국제 SSE 통계에 한국을 넣으면 새마을금고 자산 286조 원이 들어가느냐 빠지느냐로 그림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또 하나. 연대경제의 '비공식 조직 포함' 기준을 적용하면 1960~70년대 마을금고가 정확히 그 자리에 놓입니다. 등록되지 않은 마을 단위 저축조직에서 출발해 법제화된 경로는, 라이파이젠 계보 연구에서 "무엇이 이식되었고 무엇이 현지에서 생겨났는가"를 가르는 데 유용한 렌즈가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