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먼즈의 자리 — 재화 분류에서
배제 가능 | 배제 곤란 | |
경합적 | 사적재 | 공유자원(CPR) |
비경합적 | 클럽재 | 공공재 |
커먼즈는 경합적인데 배제하기 어려운 재화입니다. 한 사람이 쓰면 다른 사람 몫이 줄어드는데 막기는 어려우니 남용 위험이 생깁니다.
하딘의 오류는 배제가 "어렵다"를 "불가능하다"로 읽은 것입니다. 오스트롬이 보여준 것은 공동체가 스스로 배제 규칙을 만들면 관리가 가능하다는 사실이었죠. 즉 커먼즈의 관건은 소유가 아니라 규칙입니다.
공유자산의 유형
유형 | 사례 | 한국 |
자연자원 | 어장·산림·목초지·관개수로 | 마을어업, 마을 공동산림 |
도시공간 | 광장·유휴공간 | 볼로냐식 협약, 마을공동체 공간 |
지식 | 오픈소스·위키·오픈액세스 | — |
데이터 | 개인데이터·건강데이터 | 마이데이터 |
토지·주택 | 커뮤니티랜드트러스트 | 미도입 |
사회기반 | 커뮤니티 에너지·통신 | 에너지협동조합 |
한국의 법적 형태 — 총유
여기가 국제 문헌과 비교해 한국이 오히려 앞선 지점입니다.
커먼즈 논의에서 늘 걸리는 문제가 법적 형태입니다. 공동체가 자원을 관리한다고 할 때, 그 소유권을 법적으로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영미법 전통에서는 신탁(trust)으로 우회하고, 그래서 CLT 같은 발명이 나왔습니다.
한국 민법은 이를 명문화하고 있습니다. 총유(總有)입니다.
형태 | 지분 | 처분 | 성격 |
공유 | 있음 | 지분 자유 처분 | 개인 소유의 병렬 |
합유 | 있음 | 처분 제한 | 조합 |
총유 | 없음 | 사원총회 결의 필요 | 법인 아닌 사단 |
총유에는 지분이 아예 없습니다. 구성원은 규약에 따라 사용·수익만 할 수 있고, 관리와 처분은 사원총회 결의로만 가능합니다(민법 제276조).
이것이 커먼즈의 법적 정의 그 자체입니다. 지분이 없으니 개인이 자기 몫을 떼어 팔 수 없고, 처분에 총회 결의를 요구하니 집합적 선택 장치가 법으로 강제됩니다. 오스트롬의 설계원리 중 '집합적 선택'과 '자치권 인정'이 민법 조문으로 들어와 있는 셈입니다.
판례도 확립되어 있습니다. 어촌계가 어업권 소멸 보상금을 받으면 그 보상금은 총유 재산이고, 배분은 규약이나 총회 결의에 따라야 합니다. 그리고 총회 결의 없이 이루어진 관리·처분 행위는 상대방이 선의였더라도 무효입니다.
한국의 커먼즈 전통
법적 형태만 있는 게 아니라 실물 전통도 두텁습니다.
송계(松契) 는 마을 소나무 숲을 공동 관리하던 조직으로 문서가 남아 있습니다. 동계(洞契) 는 마을 단위 상호부조와 공동재산 관리를, 수리계는 관개수로를 공동 관리했습니다. 오스트롬이 연구한 스페인 우에르타 관개조직과 기능적으로 동일합니다.
그리고 앞서 다룬 어촌계가 지금까지 살아 있는 형태입니다.
즉 한국은 커먼즈의 법적 형태와 역사적 실물을 모두 갖고 있는데, 국제 커먼즈 문헌에는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마을금고에 대해 지적한 것과 같은 공백입니다.
자산잠금 — 커먼즈를 지키는 장치
공동 자산이 사유화되지 않게 막는 제도적 장치를 자산잠금(asset lock)이라 부릅니다.
영국 CIC의 핵심 특징이 이것이고, 한국에도 대응물이 있습니다. 사회적협동조합의 잔여재산 귀속 제한, 공익법인의 잔여재산 처리 규정, 그리고 총유의 처분 제한이 모두 자산잠금입니다. CLT의 재판매 가격 공식도 같은 원리죠.
자산잠금이 없으면 커먼즈는 결국 사유화됩니다. 그리고 사유화의 순간은 대개 처분 국면에 옵니다.
인클로저 — 커먼즈가 무너지는 방식
역사적 인클로저는 영국의 공유지 사유화였지만, 현대적 인클로저는 여러 형태로 진행됩니다. 지식 영역에서는 특허 확대와 저작권 연장으로, 데이터 영역에서는 플랫폼의 독점으로, 도시에서는 앞서 다룬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나타납니다.
한국의 마을 공동재산에서는 훨씬 직접적입니다. 판례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분쟁 유형이 있습니다 — 대표자가 일부 구성원만 모아 회의를 열고 결의서를 위조해 공동재산을 매각하는 것입니다.
주목할 점은 방어선이 하나뿐이라는 것입니다. 총회 결의 요건이 없으면 인클로저를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판례가 "선의의 제3자에게도 무효"라는 강한 입장을 취하는 것이고요.
그리고 등기 명의 문제도 큽니다. 법인 아닌 사단은 등기 능력이 제한적이어서 개인이나 대표자 명의로 등기된 마을 재산이 많고, 이것이 분쟁의 온상이 됩니다.
공유경제와의 구분
혼동이 잦아 짚어둡니다.
공유경제는 유휴자산을 시장에서 중개하는 것입니다. 소유는 개인에게, 중개는 플랫폼이, 수익은 플랫폼이 가져갑니다. 커먼즈는 공동 소유와 규칙 기반 관리이고, 목적은 수익이 아니라 이용의 지속입니다.
앞서 플랫폼협동조합을 다루며 본 비판 — "공유경제는 공유하지 않는다" — 이 이 구분에서 나옵니다.
생각해 볼 점
첫째 — 지금 진행 중인 새마을금고 합병에 커먼즈 문제가 걸려 있습니다.
이게 가장 시의적이고 아무도 다루지 않은 질문입니다.
새마을금고의 적립금은 수십 년간 조합원들이 쌓아온 공동 자산입니다. 개별 조합원에게 지분으로 귀속되지 않고, 해산하거나 합병할 때 배분 규칙에 따라 처리됩니다. 성격상 총유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2023년 이후 42개 금고가 합병됐습니다. 소멸한 금고의 적립금은 어떻게 되었는가. 존속 금고로 승계되면서 원래 조합원들의 몫은 어떻게 되는가. 부실 금고를 합병한 경우와 건전한 금고끼리 합병한 경우가 다른가.
이는 커먼즈의 재분배 문제이고, 동시에 지배구조 문제입니다. 합병 결의가 어떤 절차로 이루어졌는지, 조합원의 실질적 동의가 있었는지는 앞서 다룬 총유 판례의 논리가 그대로 적용되는 영역입니다.
둘째, 총유 개념으로 마을금고의 기원을 재해석할 수 있습니다. 1963년 마을금고가 출발할 때 마을 주민이 모은 자금의 법적 성격은 무엇이었나. 법인화되기 전이라면 법인 아닌 사단의 총유로 볼 여지가 있고, 이는 라이파이젠 논문에서 **"이식된 것이 아니라 기존 법·관습 형태와 결합한 것"**이라는 논증의 법적 근거가 됩니다.
앞서 어촌계와 송계를 짚었는데, 여기에 총유라는 법적 형태를 더하면 한국에 커먼즈의 제도적 저변이 있었다는 주장이 훨씬 단단해집니다.
셋째, 오스트롬 설계원리를 이식 실패 진단에 쓸 수 있습니다. 반복해서 말씀드리는 대목이지만, 여기서 하나 더 추가됩니다 — 법적 형태의 존부입니다. 아일랜드와 벵골에서 라이파이젠 모델을 이식할 때, 공동 자산을 담을 법적 그릇이 있었는가. 없었다면 그 자체가 실패 요인입니다.
넷째, 어촌계 어업권 보상이 실증 소재입니다. 어업권 소멸 보상금이 총유 재산이고 배분 분쟁이 반복된다면, 커먼즈가 화폐로 전환되는 순간의 거버넌스 실패를 관찰할 수 있습니다. 간척·매립·발전소 건설로 인한 보상 사례가 축적되어 있어 자료도 있습니다.
다섯째, PSPS에서 토지 등기 문제와 연결됩니다. 개도국 농촌 개발에서 공유지의 법적 지위는 핵심 난제입니다. 관습법상 공동 소유를 근대 등기 제도에 어떻게 담을 것인가. 한국의 총유 제도와 마을 공동재산 등기 문제는 그 시행착오의 기록이고, 학생들에게 **"등기를 만들면 커먼즈가 사유화될 수 있다"**는 역설을 보여주는 사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