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발적 발전론의 계보
일본에서 가장 정교하게 발전한 이론입니다.
쓰루미 가즈코가 1970년대에 근대화론을 비판하며 제시한 것이 출발점입니다. 발전 경로가 하나가 아니며 지역 고유의 문화와 전통에 기반한 발전이 가능하다는 주장이었죠.
미야모토 겐이치가 이를 지역경제학으로 구체화했습니다. 외래형 개발 — 대기업 공장 유치와 중앙정부 주도 개발 — 이 이익의 역외 유출과 환경 파괴를 낳는다고 비판하고, 내발적 발전의 네 원칙을 제시했습니다.
① 지역 기업·조합이 주체가 될 것
② 지역 자원·기술·산업을 활용할 것
③ 환경을 보전할 것
④ 지역 내 산업연관을 형성할 것
네 번째가 특히 중요합니다. 지역에서 생산한 것이 지역에서 가공되고 소비되는 연쇄가 있어야 부가가치가 남는다는 뜻이고, 이것이 뒤에 볼 지역순환경제 개념으로 이어집니다.
서구에서는 EU의 LEADER 프로그램(1991~)이 농촌 내발적 발전을 정책화했고, 이후 신내발적 발전론(neo-endogenous development) 이 등장했습니다. Ray가 정리한 이 개념은 순수한 내발도 외발도 없다는 인식에서 출발합니다. 외부 자원을 끌어오되 그 통제권을 지역이 갖는 것이 핵심이죠.
새마을운동은 내발인가 외발인가
PSPS 맥락에서 이 질문이 결정적입니다.
새마을운동은 자조·자립을 전면에 내걸었으니 내발적 발전의 언어를 씁니다. 그런데 국가가 기획하고 자재를 공급하고 마을을 등급으로 평가했으니 구조는 외래형입니다.
앞서 새마을학 문헌 리뷰에서 정리하신 '동원 대 참여' 축이 정확히 이 문제이고, 학생이 제시한 빙산 도해 — 자조·근면·협동 아래 잠긴 정부 보조금·지방 거버넌스·인프라 — 도 같은 지점을 짚습니다.
신내발적 발전 개념이 이 논쟁의 출구가 될 수 있습니다. 순수 내발이냐 순수 외발이냐를 묻는 대신, 외부 자원이 들어왔을 때 통제권이 어디 있었는가를 묻는 것이죠. 마을이 사업을 선택하고 운영했다면 신내발적이고, 배분만 받았다면 외래형입니다. 마을 등급제와 자재 배분 방식을 이 기준으로 재검토하면 논쟁이 실증 가능한 형태로 바뀝니다.
지역순환경제 — 두 개념이 섞여 있습니다
한국에서 이 말이 두 가지를 가리킵니다.
하나는 자금·소득의 지역 내 순환입니다. 지역에서 발생한 소득이 역외로 새지 않고 지역 안에서 도는 것. 지역화폐, 로컬푸드, 지역 우선구매가 정책 수단입니다.
다른 하나는 자원 순환입니다. 폐기물을 자원으로 되돌리는 EU식 circular economy이고, 앞서 UN 브리프가 SSE와의 접점으로 언급한 개념입니다.
둘은 다른 문제이고 정책도 다릅니다. 국내 논의가 이를 뭉뚱그려 쓰는 경향이 있습니다.
누출과 승수
전자의 핵심 개념은 누출(leakage) 과 지역승수(local multiplier) 입니다.
지역에 1억 원이 들어왔을 때 얼마가 지역 안에 남는가. 영국 신경제재단이 개발한 LM3는 1차 지출, 수령자의 재지출, 그 다음 재지출까지 세 단계를 추적해 승수를 계산합니다.
대형마트와 지역 상점의 차이가 여기서 갈립니다. 매출의 상당 부분이 본사로 이전되는 체인점과, 지역 내 급여와 조달로 재지출되는 지역 사업체의 승수는 크게 다릅니다. SSE 조직이 지역경제에 기여한다는 주장의 실질적 근거가 이것이고, 앞서 다룬 지역화폐 효과 논쟁도 같은 틀 위에 있습니다.
금융의 자금순환 — 지역재투자 평가제도
여기가 이 주제에서 가장 실증적으로 접근 가능한 영역이고, 선생님 전공과 정확히 겹칩니다.
예대율이 지역 자금순환의 핵심 지표입니다. 지역에서 모은 예금이 지역에서 대출되는가, 아니면 중앙으로 이전되는가.
미국은 1977년 지역재투자법(CRA) 으로 이를 의무화했습니다. 은행이 예금을 받은 지역에 재투자하도록 하고, 실적을 평가해 인수합병 인가에 반영합니다.
한국에도 유사 제도가 있습니다. 2018년 10월 도입되어 2020년부터 시행된 지역재투자 평가제도입니다. 지역 내 자금공급, 중소기업 지원, 서민대출, 금융 인프라를 평가해 5등급으로 구분하고 인센티브를 부여합니다.
다만 법률이 아니라 행정 평가입니다. 미국 CRA처럼 인가 심사에 연동되는 강제력은 없고, 사회적금융 진영에서 지역재투자법 제정을 요구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앞서 여러 번 본 패턴 — 법 없이 행정으로 굴러가는 정책의 취약성 — 이 반복됩니다.
두 지표의 역설
2024년도 평가 결과에 흥미로운 대목이 있습니다.
지표 | 지역 | 수도권 |
예대율 | 123.7% | 97.3% |
생산비중 대비 여신비중 | 47.5% → 34.8% (△12.7%p) | — |
예대율만 보면 지역이 수도권보다 높습니다. 지역에서 모은 예금보다 더 많이 대출한다는 뜻이죠. 표면적으로는 자금이 지역으로 유입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경제 규모 대비로 보면 반대입니다. 평가지역의 생산 비중은 47.5%인데 여신 비중은 34.8%로, 12.7%포인트 부족하고 그 격차가 전년보다 확대됐습니다.
두 지표의 분모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지역은 예금 기반 자체가 작아서 예대율이 높게 나오지만, 경제 규모에 비하면 금융 공급이 여전히 부족합니다. 예대율 하나로 지역 금융을 평가하면 오독하게 됩니다.
지역별 편차도 큽니다. 제주 184.3%, 대구 158.1%, 광주 150.4%인 반면 전북 70.6%, 강원 76.2%는 100%를 밑돕니다.
비판과 한계
내발적 발전은 낭만화되기 쉽습니다. 지역에 활용할 자원과 역량이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데, 인구가 빠지고 산업 기반이 무너진 곳에는 그 전제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폐쇄성의 위험도 있습니다. 외부와의 연결을 차단하면 오히려 정체합니다. 신내발적 발전론이 나온 이유죠.
'지역'의 경계도 문제입니다. 행정구역인가 생활권인가 경제권인가에 따라 누출과 승수의 계산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그리고 앞서 확인했듯 지역화폐가 지방소멸의 촉매는 될 수 있어도 해법은 아니라는 것이 대체적 평가입니다. 수요 측 정책만으로는 공급 기반의 붕괴를 되돌릴 수 없습니다.
생각해 볼 점
첫째 — 2022년 예대비율 결과를 자금순환 관점에서 재해석할 수 있습니다.
새마을금고 연구에서 예대비율이 금융포용에 음(-)의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를 얻으셨습니다. 지금까지는 건전성 관점에서 읽었을 텐데, 지역 자금순환 관점에서 보면 다른 해석이 열립니다.
예대율이 높다는 것은 지역 예금을 지역에서 소진한다는 뜻인데, 그것이 포용을 낮춘다면 대출의 방향이 문제입니다. 부동산 담보대출로 나가면 예대율은 높아지지만 포용은 떨어집니다. 2023년 담보대출 논문과 묶으면 **"예대율이 아니라 여신의 구성이 지역순환의 질을 결정한다"**는 명제를 세울 수 있습니다.
둘째, 지역재투자 평가 데이터가 공개되어 있습니다. 금융위가 매년 평가 결과를 지역별로 발표합니다. 여기에 새마을금고·신협 자료를 결합하면 상호금융이 지역 자금순환에서 차지하는 역할을 정량화할 수 있습니다. 현재 지역재투자 평가는 은행·저축은행 중심이고 상호금융은 사실상 빠져 있는데, 이들이야말로 지역 자금순환의 핵심 주체입니다. 이 공백을 지적하는 것만으로도 정책 기여가 됩니다.
셋째, 산업연관분석 경험이 지역승수 측정으로 이어집니다. 2017년 도자산업 연구에서 지역 산업연관표를 다루셨습니다. 지역 내 산업연관 형성이 미야모토 내발적 발전론의 네 번째 원칙이므로, 산업연관분석은 내발성을 측정하는 정통 도구입니다. LM3 같은 조사 기반 방법보다 훨씬 엄밀하고요.
넷째, 새마을금고 적정규모 연구가 여기서 이론적 근거를 얻습니다. 노션에 모아두신 「내생적 지역발전을 위한 새마을금고 적정규모 연구」 자료가 바로 이 계보입니다. 금고가 커지면 지역 밀착이 약해지고 자금이 지역 밖으로 나갈 가능성이 커진다는 가설을 세우면, 앞서 다룬 규모화 딜레마와 자금순환 논의가 하나로 묶입니다.
다섯째, 광주·전남 경험이 자산입니다. 2020년 인건비 충격이 광주·전남 지역경제에 미친 영향을 분석하셨고, 대구경북연구원 시절 지방재정을 다루셨습니다. 두 지역 모두 지역재투자 평가에서 대조적 위치에 있습니다 — 광주 150.4%, 전남 95.7%. 같은 호남권 안에서도 갈리는 이유를 설명하는 작업이 가능합니다.
여섯째, PSPS 강의의 이론틀이 됩니다. 내발적 발전론은 새마을운동을 국제 담론에 접속시키는 가장 자연스러운 통로입니다. 일본에서 정립된 이론이라 아시아적 맥락이 있고, EU LEADER와 신내발적 발전론이 서구 대응물을 제공하니 학생들이 자국 사례를 놓을 좌표계가 만들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