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제란 무엇인가 — 보험과 원리는 같고 주체가 다르다
공제(共濟)는 조합원이 갹출한 재원으로 조합원의 우연한 손실을 보상하는 제도입니다. 위험을 모아 나눈다는 원리는 보험과 동일합니다. 다른 것은 누가 하느냐입니다.
보험 | 공제 | |
목적 | 영리 | 비영리 |
대상 | 불특정 다수 | 특정 단체 구성원 |
근거 | 보험업법 | 개별 근거법 |
감독 | 금융위·금감원 | 소관 부처 제각각 |
공동유대(common bond)가 핵심 장치입니다. 가입 대상을 특정 집단으로 한정하면 역선택과 도덕적 해이가 줄어듭니다. 라이파이젠의 무한책임과 좁은 지역 범위, 오스트롬의 '명확한 경계'가 여기서도 같은 원리로 작동합니다.
계보로는 중세 길드에서 영국 우애조합(friendly society)을 거쳐 근대 상호보험으로 이어지고, 한국에는 계(契)·두레·향약이라는 자생 전통이 있었습니다.
한국의 공제 지형 — 네 갈래
① 직역 공제 — 교직원공제회, 군인공제회, 지방행정공제회, 경찰공제회, 과학기술인공제회 등. 이들은 이제 공제라기보다 대형 기관투자자입니다. 자산운용 규모가 수십조에 이르고 부동산·대체투자의 주요 참여자입니다.
② 협동조합 공제 — 신협공제, 수협공제, 새마을금고 공제, 생협공제. 농협공제는 2012년 사업구조개편으로 NH농협생명·손해보험이 되어 보험업 체계로 편입됐습니다. 나머지는 여전히 공제로 남아 있습니다.
③ 사업자단체 공제 — 건설공제조합, 전문건설공제조합, 소프트웨어공제조합, 엔지니어링공제조합 등. 보증과 융자가 주업이라 사실상 보증기관입니다. 그리고 화물·택시·버스 등 자동차 공제가 별도로 있습니다.
④ 소상공인 공제 — 중소기업중앙회의 노란우산공제가 대표적입니다. 폐업·노령에 대비한 소상공인 사회안전망이고, 소득공제 혜택과 압류 금지가 붙습니다. 새마을금고중앙회·수협중앙회·우정사업본부를 통해 가입할 수 있어 서민금융기관이 판매 채널로 참여합니다.
규제의 문제 — 동일기능 동일규제
공제의 소관 부처가 제각각입니다. 새마을금고 공제는 행안부, 수협공제는 해수부, 건설공제조합은 국토부, 자동차 공제도 국토부, 노란우산공제는 중기부입니다.
그래서 감독 수준이 균등하지 않습니다. 지급여력 규제의 적용 여부와 강도, 회계·공시 기준, 계약자 보호 장치가 기관마다 다릅니다. 예금자보호법 대상도 아닙니다.
여기서 두 가지 문제가 나옵니다.
규제차익입니다. 실질적으로 같은 기능을 수행하는데 규제 강도가 다르면 자금이 느슨한 쪽으로 쏠리는 풍선효과가 생깁니다. 보험업계가 오래 제기해온 비판이기도 합니다.
건전성 사각지대입니다. 자동차 공제의 손해율 악화와 지급여력 문제, 그리고 2023년 새마을금고 사태 이후 상호금융 전반의 건전성에 대한 관심이 겹치면서 공제 부문도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해법을 두고 두 갈래가 있습니다. 금융당국으로 감독을 일원화하자는 주장과, 협동조합의 특성과 고유성을 고려해 별도의 '협동조합청'을 설립하자는 주장입니다. 후자가 최근 상호금융 규제 논의에서 부상하고 있습니다.
이 논쟁의 본질은 앞서 다룬 동형화 문제입니다. 동일기능 동일규제를 관철하면 협동조합 금융은 상업금융과 같은 규제를 받게 되고, 그러면 조직 형태의 차이가 무의미해집니다. 반대로 특수성을 인정하면 규제차익이 남습니다. 협동조합의 정체성과 금융 안정성이 정면으로 부딪히는 지점입니다.
사회적경제 담론에서의 또 하나의 누락
국제 기준에서 공제조합은 사회적경제의 네 기둥 중 하나입니다. 협동조합·공제조합·결사체·재단이 프랑스식 정의의 표준 목록이고, ILO 2022년 정의도 mutual societies를 명시합니다. 프랑스의 mutuelles는 공적 건강보험을 보완하는 거대한 부문입니다.
그런데 한국 사회적경제 담론에서 공제는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사회연대경제기본법도 농협·수협·신협·새마을금고·생협은 포함했지만 건설공제조합류나 직역 공제는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비영리·재단·시민사회단체에 이어 세 번째 누락입니다. 새마을금고류 금융협동조합, 비영리·재단 부문, 그리고 공제 부문. 국제 기준의 네 기둥 중 협동조합만 남고 나머지가 빠지거나 축소된 셈입니다.
다만 역방향의 움직임이 있습니다. 2026년 사회적기업 정책방향에 공제기금 도입이 추진 과제로 들어갔습니다. 사회연대경제 부문이 자체 상호부조 장치를 만들겠다는 것이고, 공제를 정책 언어 안으로 들여오는 첫 시도입니다.
개도국 맥락 — PSPS와 직결
세네갈 건강공제조합(mutuelles de santé) 이 좋은 사례입니다. UN 브리프가 명시했듯 2012년 이후 100개 이상이 설립돼 공적 의료 공급의 공백을 메우고 있습니다. 프랑스 mutuelles 전통이 서아프리카에 이식된 경로이고, 세네갈이 UN SSE 결의 조정국이자 2021년 SSE 기본법 제정국이라는 점과 맞물립니다.
아프리카의 tontine, 아시아의 ROSCA(회전저축신용조합)는 한국의 계(契)와 구조가 같습니다. 정해진 인원이 정기적으로 갹출해 순번대로 목돈을 받는 방식이죠. 공식 금융이 없는 곳에서 사람들이 반복적으로 발명해온 형태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생각해 볼 점
첫째 — 가장 직접적인 다리입니다. 보증과 공제는 구조가 같습니다.
신용보증 | 공제 |
운용배수 | 지급여력비율 |
대위변제율 | 손해율 |
출연금 | 책임준비금 |
보증공급 임계 | 인수 한도 |
둘 다 위험을 모아 나누고, 적립 재원 대비 인수 규모의 비율이 건전성을 결정합니다. 2014년 이후 축적하신 운용배수 연구의 분석틀이 공제 부문에 거의 그대로 이전됩니다. 그리고 공제 부문의 적정 운용 규모에 대한 연구는 국내에 사실상 없습니다.
둘째, 새마을금고 연구의 미개척 영역이 여기 있습니다. 지금까지 7편은 여신·수신과 금융포용을 다뤘습니다. 공제사업은 별도의 수익원이자 별도의 위험원인데 분석에 포함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공제 손해율과 경영성과의 관계, 여신 부문과 공제 부문의 위험 상관을 보면 기존 패널에 새 층위를 더할 수 있습니다.
셋째, 노란우산공제가 소상공인 연구와 정확히 만납니다. 폐업 대비 공제이므로 가입 여부가 폐업 후 재기 가능성에 미치는 영향을 볼 수 있고, 2019년 자영업자 폐업률 연구와 생존분석 방법론이 그대로 쓰입니다. 새마을금고가 판매 채널이라는 점에서 두 연구 계열이 자연스럽게 연결되기도 합니다.
넷째, 2026년 사회적기업 공제기금은 설계 단계입니다. 재원 규모, 인수 한도, 손해율 가정, 지급여력 기준을 정해야 하는데 이는 보증기금 설계와 동일한 작업입니다. 신보·기술신보 운용배수 용역을 막 마치신 시점이라 자문 수요가 생길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섯째, 협동조합청 논의에 학술적 근거를 댈 수 있습니다. "협동조합 금융에 상업금융과 동일한 규제를 적용하는 것이 타당한가"는 결국 소유구조가 위험행태를 다르게 만드는가라는 실증 질문입니다. 예금자와 차입자가 겹치는 구조가 위험선호를 실제로 낮추는지, 그렇다면 규제 차등의 근거가 되는지 — 선생님의 패널 데이터로 접근 가능한 질문입니다.
여섯째, 계(契)에서 공제로 이어지는 계보가 PSPS 강의 자료가 됩니다. 한국의 계, 서아프리카의 tontine, 남아시아의 ROSCA가 같은 구조라는 점을 보여준 뒤, 한국에서 그것이 어떻게 공제와 마을금고로 제도화됐는지를 추적하면, 학생들이 자국의 비공식 상호부조 조직을 제도화 경로 위에 놓고 볼 수 있게 됩니다. 그라민 준거를 대체할 좋은 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