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별도 주제인가
ICA 협동조합 7원칙 중 제5원칙이 '교육·훈련·정보'입니다. 조직 운영 원칙 목록에 교육이 들어가 있는 것은 특이한 일이죠. 주식회사 원칙에 교육이 들어가지는 않으니까요.
이유가 있습니다. 협동조합은 조합원이 운영하는 조직이므로, 조합원이 운영할 줄 몰라도 굴러가는 주식회사와 달리 교육이 존립 조건입니다.
그리고 앞서 다룬 문제들 — 노동의 저임금과 소진, 세대교체 실패, 통계와 연구의 부재 — 이 모두 인재와 지식의 재생산 실패로 수렴합니다.
교육이 조직을 만든다 — 국제 계보
순서가 중요합니다.
몬드라곤은 1943년 아리스멘디아리에타 신부가 기술학교를 세운 뒤 1956년에야 첫 협동조합이 만들어졌습니다. 13년의 시차입니다. 학교에서 배운 사람들이 나중에 조합을 세운 것이죠.
안티고니시 운동도 마찬가지입니다. 1920~30년대 캐나다 노바스코샤에서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대학의 성인교육 프로그램이 먼저 있었고, 스터디클럽에서 배운 어민과 농민이 신협과 협동조합을 만들었습니다. 코디 신부와 톰킨스 신부가 이끈 이 운동은 1959년 코디국제연구소(Coady International Institute) 설립으로 이어져, 개도국 지도자를 교육하는 기관이 됐습니다.
즉 두 사례 모두 교육기관이 먼저 서고 조직이 뒤따랐습니다.
한국 신협은 코디연구소에서 왔습니다
계보가 명확하게 확인됩니다.
1957년 9월 장대익 신부가, 12월에는 메리 가브리엘라 수녀가 캐나다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대학 부설 코디연구소에서 안티고니시 협동조합 운동의 이론과 실제를 배웠습니다.
그리고 1960년 부산 메리놀병원 나사렛의 집에서 성가신용협동조합을 창립했습니다. 한국 최초의 신협입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그다음입니다.
가브리엘라 수녀는 1962년 협동조합 교도봉사회를 부산에 세웠습니다. 신협 운동을 조직적으로 보급하기 위한 교육기관이었고, 초대 원장을 맡았습니다.
그가 한국을 떠나며 남긴 것은 신협 조직만이 아니었습니다. 신협 정신을 교육하는 교도봉사회와 신협을 이끌 지도자들, 그리고 60여 개의 지역 신협이었습니다.
여기서 명제가 하나 나옵니다.
이식된 것은 조직이 아니라 교육기관이었다.
조직은 복제해도 사라지지만, 교육기관은 계속 사람을 만듭니다. 안티고니시가 코디연구소를 낳고, 코디연구소가 가브리엘라 수녀를 교육하고, 가브리엘라 수녀가 교도봉사회를 세우고, 교도봉사회가 한국 신협 지도자를 길렀습니다.
한국의 교육 인프라 — 현재
대학원 과정이 소수 존재합니다. 영남대 박정희새마을대학원, 성공회대 협동조합경영학과, 한신대 사회혁신경영대학원 등입니다. 학부 정규 과정은 사실상 없습니다.
기관 교육은 부문별로 갈려 있습니다.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과 지역 아카데미, 생협의 자체 교육, 신협 연수원과 새마을금고 MG인재개발원, 새마을운동중앙연수원이 각각 운영됩니다.
즉 실무 교육은 있는데 학술 교육이 얇습니다. 그리고 실무 교육은 조직별로 분절되어 있어 부문 전체를 보는 시야가 길러지지 않습니다.
연구 인프라의 취약성
학회와 학술지는 있습니다. 한국협동조합학회, 사회적기업연구원, 그리고 『한국협동조합연구』, 『사회적기업연구』, 『사회적가치와 기업연구』, 『기업과혁신연구』 같은 지면이 있습니다.
그런데 전담 국책연구기관이 없습니다. 농촌경제연구원이 농협을, 노동연구원이 사회적기업 고용을, 보건사회연구원이 자활을 부분적으로 다루지만 부문 전체를 담당하는 기관은 없습니다.
국제와 비교하면 격차가 큽니다. 벨기에 리에주의 CIRIEC은 1947년부터 공공·사회적경제를 연구해왔고, EMES는 유럽 연구 네트워크를 형성했으며, ICA와 EURICSE는 세계협동조합모니터를 발간합니다. UNTFSSE는 지식허브를 운영하고요.
그리고 이것이 앞서 다룬 통계 인프라 부재와 서로를 강화합니다. 데이터가 없으니 연구가 어렵고, 연구자가 적으니 데이터 수요도 형성되지 않습니다.
구조적 문제 — 파이프라인의 단절
세 지점에서 끊깁니다.
진입. 대학에서 배울 곳이 없으니 이 분야를 알고 들어오는 사람이 적습니다.
정착. 앞서 다룬 저임금과 불안정 고용 때문에 들어온 사람도 오래 머물지 못합니다.
재생산. 학위 과정이 적으니 연구자가 재생산되지 않고, 인접 분야 연구자가 부업처럼 다루는 구조가 이어집니다.
그리고 실무와 연구가 단절되어 있습니다. 현장은 데이터를 갖고 있으나 분석 역량이 없고, 연구자는 역량이 있으나 데이터에 접근하지 못합니다. 중간지원조직이 이를 매개해야 하는데 앞서 본 대로 여력이 없습니다.
참고로 OECD 권고의 아홉 구성요소 중 세 개가 이 문제에 걸칩니다 — 1번 사회적경제 문화, 6번 역량과 경영지원, 8번 데이터.
생각해 볼 점
첫째 — PSPS가 코디국제연구소의 한국판입니다.
구조가 정확히 같습니다.
코디국제연구소 | PSPS | |
설립 | 1959 | 2012 |
대상 | 개도국 지도자 | 개도국 공무원·실무자 |
방식 | 본국에 돌아가 조직 설립 | 본국에 돌아가 정책 수행 |
모태 | 안티고니시 운동 | 새마을운동 |
그리고 한국 신협 자체가 코디연구소의 산물입니다. 1957년 가브리엘라 수녀가 그곳에서 배워왔으니까요.
즉 한국은 코디 모델의 수혜국이었다가 PSPS로 공여국이 됐습니다. 이 서사는 앞서 계획하신 국제 연구에 강력한 프레임을 제공합니다. "한국이 무엇을 전수하는가"가 아니라 "한국은 어떻게 배웠고 이제 무엇을 전달하는가" 라는 구조죠.
둘째 — 라이파이젠 논문의 결정적 변수가 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이식 성공 요인의 후보로 감사연합회, 총유 같은 법적 형태, 커먼즈 관리 전통을 짚었습니다. 여기에 교육기관이 추가됩니다.
"이식의 매개가 무엇이었는가" 라는 질문으로 재구성하면, 아일랜드와 벵골에서는 제도를 복제했지만 교육기관을 세우지 않았을 가능성을 검토할 수 있습니다. 반면 한국은 코디연구소에서 배운 사람이 돌아와 먼저 교육기관(교도봉사회)을 세웠습니다.
셋째, 교과 설계 연구가 이 맥락에 놓입니다. 130건 코퍼스 분석이 진행 중인데, 이를 "국제개발 교육기관이 지식을 어떻게 이전하는가" 라는 틀에 넣으면 개별 강의 사례를 넘어섭니다. 코디연구소가 60년간 축적한 방법론과 비교할 여지도 있고요.
넷째, 사회조사방법론 강의가 연구 인프라 이전입니다. PSPS에서 통계와 조사방법론을 가르치신다는 것은, 개도국에 분석 역량을 이전하는 작업입니다. 앞서 지적한 "데이터가 없으니 연구가 안 되고 연구가 없으니 데이터도 없다"는 악순환을, 사람을 통해 끊는 방식이죠.
다섯째, PAP가 연구 인프라 구축 그 자체입니다. 그리고 동문을 데이터 수집 주체로 세운다는 점에서, 코디 모델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교육받은 사람이 본국에서 무언가를 만드는 것 — 이번에는 조직이 아니라 데이터를 만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