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격 체계 — 복잡하고, 허가가 필요하다
한국 비영리 조직의 법적 지위는 여러 갈래로 갈려 있습니다.
유형 | 근거법 | 설립 방식 |
민법상 사단·재단법인 | 민법 제32조 | 주무관청 허가 |
공익법인 | 공익법인법(1975) | 허가 + 강화된 감독 |
사회복지법인 | 사회복지사업법 | 허가 (복지부) |
비영리민간단체 | 비영리민간단체지원법(2000) | 등록 |
사회적협동조합 | 협동조합기본법 | 인가 |
특수법인 | 개별법 | 법률로 설립 |
핵심은 민법 제32조의 허가주의입니다. 학술·종교·자선·기예·사교 등 비영리 사업을 하는 사단이나 재단은 주무관청의 허가를 얻어야 법인이 됩니다. 그런데 법에 허가 기준이 없어 주무관청 재량에 맡겨져 있고, 부처마다 요건이 다르게 적용됩니다.
이건 국제적으로 매우 예외적입니다. 비영리법인 설립에 허가주의를 유지하는 나라는 한국을 제외하면 중국·러시아 등 소수이고, 일본을 포함한 대부분의 국가는 준칙주의로 전환한 뒤 공익성 여부는 별도의 인증이나 세제 혜택 단계에서 판단합니다.
지금 헌법재판소에서 다투는 중입니다. 서울행정법원이 위헌제청을 했고(2025아12945) 위헌법률심판이 진행 중입니다. 쟁점은 결사의 자유 침해입니다. 결과에 따라 한국 비영리 부문의 지형이 바뀔 수 있으므로 지켜볼 사안입니다.
비영리민간단체 등록제는 이 허가주의의 우회로로 만들어졌습니다. 법인이 아니어도 되고, 상시 구성원 100인 이상과 1년 이상의 공익활동 실적 등을 갖춰 행안부나 시도에 등록하면 보조금 신청 자격, 우편요금 감액, 조세 감면을 받습니다.
재단 — 기업재단 편중
한국 재단의 구성이 서구와 크게 다릅니다. 순수 자선 전통에서 나온 독립 재단보다 대기업 계열 공익재단의 비중이 압도적입니다.
이 구조가 두 가지 논쟁을 낳습니다. 지배구조 승계 도구 논란 — 재단이 계열사 주식을 보유하면 의결권을 통해 지배력을 유지하는 수단이 될 수 있어, 상속세및증여세법이 공익법인의 주식 보유 한도를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율성 문제 — 출연 기업의 영향에서 독립적으로 운영되는가.
지역재단(community foundation)은 아직 미약합니다. 지역에서 모금해 지역에 배분하는 모델이 부산·천안 등 일부에 있으나 규모가 작습니다. 개인 기부의 비중이 낮고 기업 기부에 의존하는 기부문화가 배경입니다.
시민사회단체 — 옹호 중심의 계보
1987년 민주화 이후 폭발적으로 성장했습니다. 경실련(1989), 환경운동연합(1993), 참여연대(1994)가 대표적이고, 2000년 총선시민연대의 낙천낙선운동이 영향력의 정점이었습니다. 같은 해 비영리민간단체지원법이 제정되며 제도화됐습니다.
성격이 뚜렷합니다. 서비스 공급보다 감시와 정책 옹호가 중심이고, 회비를 내는 소액 다수 후원자에 기반한 재정 모델을 만들었습니다. 이 점에서 서비스 제공 중심의 서구 비영리 부문과 결이 다릅니다.
최근 위기는 복합적입니다. 회원 고령화와 신규 유입 감소, 상근자 저임금과 인력 이탈, 정치적 양극화 속 진영화, 그리고 정부 보조금을 둘러싼 논란입니다. 2023년 이후 비영리민간단체 보조금에 대한 대대적 감사와 관리 강화가 있었고, 이는 다시 재정 압박으로 이어졌습니다.
여기서도 앞서 본 패턴이 반복됩니다 — 정권에 따라 지원이 급변하고, 그 변동성 자체가 조직 기반을 훼손합니다.
자원봉사 — 계정에 잡히지 않는 노동
「자원봉사활동 기본법」(2005)에 근거해 행안부–한국중앙자원봉사센터–시도/시군구 센터 체계로 운영되고 1365 포털이 실적을 관리합니다.
한국적 특징은 동원형 성격입니다. 학생 봉사시간, 기업 사회공헌 실적, 공공기관 평가 지표가 참여를 유인합니다. 자발성이라는 원리와 실제 작동 사이에 간극이 있습니다.
SSE 이론에서 자원봉사는 중요한 자리를 차지합니다. 앞서 정리한 라빌의 복수경제론에서 SSE 조직은 시장 수입 + 공적 재원 + 비화폐 자원의 혼합으로 작동하는데, 자원봉사가 세 번째 축입니다. 그런데 이 노동은 국민계정의 생산경계 밖에 있어 통계에 잡히지 않습니다. 페미니스트 경제학이 무급 돌봄노동에 대해 제기한 문제와 정확히 같은 구조입니다.
왜 이들은 '사회적경제'에서 빠지는가
여기가 이 유형의 가장 중요한 쟁점입니다.
앞서 개념 다이어그램에서 정리했듯, 국제 기준으로 보면 결사체와 재단은 사회적경제의 원래 구성요소입니다. 프랑스식 정의는 협동조합·공제조합·결사체·재단을 네 기둥으로 삼고, ILO 2022년 정의도 결사체와 재단을 명시합니다.
그런데 한국 사회적경제 정책은 이들을 뺐습니다. 사회적기업·협동조합·마을기업·자활기업이 표준 목록이고, 비영리법인·재단·시민사회단체는 별개의 세계로 취급됩니다. 사회연대경제기본법 역시 이들을 명시하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정책 계보의 차이입니다. 한국 사회적경제는 일자리 정책에서 출발했습니다. 취약계층 고용과 자활이 원점이었으므로, 고용을 매개로 하지 않는 옹호 단체나 재단은 처음부터 시야 밖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한국의 '사회적경제'는 국제 기준보다 좁게 획정되어 있습니다. 새마을금고가 빠진 것과 같은 구조의 누락이고, 이 두 누락을 합치면 국제 통계와 한국 통계를 비교할 때 상당한 왜곡이 생깁니다.
다만 변화의 신호가 있습니다. 행정안전부 조직 체계에서 비영리민간단체는 이미 '사회연대경제 > 민간협력' 항목 아래 배치되어 있습니다. 마을기업과 마찬가지로, 통합의 흐름이 법 제정보다 조직 개편에서 먼저 나타나고 있습니다.
생각해 볼 점
첫째 — PSPS 강의에서 가장 강력한 대비가 여기서 나옵니다.
개도국에서는 NGO가 마이크로파이낸스의 주된 공급자입니다. 그라민 자체가 NGO에서 출발해 은행이 됐고, 방글라데시 BRAC과 ASA, 아프리카·중남미의 무수한 사례가 그렇습니다. 비영리조직이 금융을 하는 것이 표준입니다.
한국은 정반대입니다. 비영리법인은 금융을 할 수 없고, 협동조합기본법도 금융업을 배제했으며, 서민금융은 별도의 금융기관 체계로 갔습니다. 사회적협동조합의 소액대출 조항이 거의 유일한 예외인데 활용도가 낮습니다.
이 대비를 수업에서 던지면 논점이 살아납니다. "당신 나라에서 NGO가 금융을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가, 아니면 다른 제도가 없어서인가?" 그리고 "한국은 왜 NGO와 금융을 분리했고, 그 결과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가?" 앞서 관찰하신 그라민 단일 준거 문제를 우회하는 좋은 질문 구조입니다.
둘째, 재단 자산운용은 비어 있는 금융 연구 주제입니다. 공익법인이 보유한 기금이 어떻게 운용되는지, 사회투자나 임팩트투자로 연결될 여지가 있는지에 대한 국내 실증이 거의 없습니다. 선생님의 자산가격·포트폴리오 배경과 사회적 가치 평가 연구가 만나는 지점이고, 사회연대경제기본법이 도입하려는 공제기금과도 이어집니다.
셋째, 시민사회단체의 재정 모델과 서민금융이 구조적으로 닮았습니다. 소액 다수 후원과 소액 다수 예금은 둘 다 관계와 신뢰에 기반한 소액 자금 동원입니다. 회원 고령화와 신규 유입 감소라는 시민사회의 위기는, 새마을금고·신협이 겪는 조합원 고령화 문제와 같은 인구학적 배경을 갖습니다. 사회자본 이론으로 두 현상을 함께 다룰 수 있습니다.
넷째, 자원봉사 가치의 측정이 사회적가치 화폐화 시범사업과 직결됩니다. 2026년부터 시작되는 그 사업이 사회성과를 화폐가치로 환산하는데, 자원봉사 투입을 어떻게 셀 것인가는 그 방법론의 핵심 쟁점입니다. AHP 기반 가중치 도출 경험이 여기서 쓰입니다.
다섯째, 헌재 결정을 주시하실 만합니다. 허가주의가 위헌으로 판단되면 비영리 조직 설립이 자유화되고, 그러면 사회연대경제의 조직 기반 자체가 넓어집니다. 마침 사회연대경제기본법 논의와 시기가 겹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