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자본, 신제도주의, 다원적 경제(plural economy), 페미니스트 경제학·돌봄경제
앞의 네 계보가 왜 필요한가를 말한다면, 이 네 이론은 실제로 어떠한가를 분석하는 도구입니다. 규범이 아니라 진단 쪽이고, 그래서 SSE에 우호적이지만은 않습니다.
이론 | 답하는 질문 |
사회적자본 | SSE는 무엇에 의존하는가 |
신제도주의 | SSE는 왜 변질되는가 |
다원적 경제 | SSE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
페미니스트·돌봄경제 | SSE는 무엇을 놓치는가 |
사회적자본 — 같은 이름의 세 이론
사회적자본은 하나의 이론이 아니라 서로 충돌하는 세 계보가 같은 이름을 쓰는 경우입니다.
부르디외에게 사회자본은 불평등 재생산의 도구입니다. 연결망을 가진 자가 그것을 자본으로 전환해 계급 지위를 물려줍니다. 콜먼은 합리적 선택 틀에서 폐쇄적 관계망이 의무·기대·정보·제재를 통해 행위를 촉진한다고 봤습니다. 퍼트넘은 이를 공공재로 뒤집었습니다. 이탈리아 남북 비교에서 북부의 수평적 결사 전통이 제도 성과 차이를 만든다는 주장이었고, 이후 결속형(bonding)과 교량형(bridging) 구분으로 이어집니다.
세계은행이 1990년대에 퍼트넘 버전을 개발 담론의 '빠진 고리'로 채택하면서 오늘의 용법이 굳었습니다.
비판이 만만치 않습니다. 순환논증 — 좋은 결과가 나오면 사회자본이 있었다고 사후에 설명하는 구조(Portes 1998). 부정적 사회자본 — 마피아도 사회자본이 두텁고, 결속은 외부 배제와 개인 자유 제약을 동반합니다. 그리고 탈정치화 — 구조적 불평등을 관계망 문제로 환원한다는 지적(Fine 2001).
금융 연구에서 이 개념은 매우 구체적입니다. 그라민식 그룹대출의 연대책임은 사회자본을 담보로 전환하는 기술입니다. Ghatak과 Guinnane이 정리한 동료선별·동료감시·동료집행 메커니즘이 그것이고, 라이파이젠의 무한책임+좁은 범위도 같은 원리의 19세기 판입니다.
신제도주의 — 왜 협동조합은 은행을 닮아가는가
세 갈래 중 SSE 연구에 가장 날카로운 건 사회학적 신제도주의입니다.
디마지오와 파월(1983)의 동형화(isomorphism) — 조직은 효율이 아니라 정당성을 얻기 위해 서로 닮아갑니다. 규제 때문에(강압적), 불확실할 때 성공한 조직을 베껴서(모방적), 전문경영·회계·자격증 체계를 통해(규범적).
연대경제 진영이 "사회적경제가 제도화되면서 운동성을 잃었다"고 비판하는 것을, 이 언어로 옮기면 정확히 동형화입니다. 아르헨티나 협동조합이 "경제적·기술적 지원의 대가로 급진성을 잃었다"는 UN 브리프의 서술도 마찬가지고요.
합리적선택 계열에서는 노스가 제도를 공식 규칙 + 비공식 규범 + 집행 특성으로 나눈 것이 유용합니다. 법은 같은데 결과가 다른 이유를 다룰 수 있는 틀이니까요. 윌리엄슨의 거래비용 관점에서 협동조합은 시장과 위계 사이의 하이브리드 지배구조로 분류됩니다.
역사적 신제도주의의 경로의존성과 결절적 국면 개념은 "왜 독일에서는 뿌리내리고 아일랜드·벵골에서는 실패했나"를 다루는 데 직접 쓰입니다. 텔렌의 점진적 제도변화 유형 — 층화, 전환, 표류, 대체 — 은 새마을금고가 60년에 걸쳐 어떻게 변했는지를 분류하는 도구가 됩니다.
다원적 경제 — 혼합은 결함이 아니다
폴라니를 이어받은 라빌과 프랑스 학파의 작업입니다. 경제를 시장·재분배·호혜의 세 극으로 보면, SSE 조직이 판매 수입과 공공 보조와 자원봉사를 섞어 쓰는 것은 불완전한 기업이라서가 아니라 원래 그런 존재이기 때문이 됩니다. 혼합 자원(hybrid resources)을 결함에서 정의적 특징으로 재규정한 것이 이 이론의 기여입니다.
여기에 하버마스의 공공영역 개념이 결합됩니다. SSE는 서비스를 싸게 공급하는 장치가 아니라 시민이 스스로 필요를 정의하는 정치적 공간이라는 주장이죠. 앞서 본 네 접근 중 'social entrepreneurship'과 갈라지는 지점이 정확히 여기입니다.
깁슨-그레이엄의 '다양한 경제(diverse economies)' 는 한 발 더 나갑니다. 자본주의를 유일한 경제로 보는 것 자체가 담론적 구성이며, 그 인식이 대안을 상상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겁니다. 이들의 빙산 도해 — 수면 위 임금노동과 시장교환, 수면 아래 가사노동·선물·자급·협동조합 — 는 지금 널리 쓰입니다.
참고로 노션에 기록해두신 2025년 학생 발표, 새마을운동의 성공이 자조·근면·협동 아래 잠긴 정부 보조금·지방 거버넌스·시장 접근·인프라에 의존했다는 빙산 도해가 바로 이 계보의 도구입니다. 학생이 의식했든 아니든 깁슨-그레이엄의 형식을 정확히 가져온 것이고, 교육 연구 논문에서 짚을 만한 대목입니다.
페미니스트 경제학·돌봄경제 — SSE의 사각지대
가장 비판적인 인접 이론입니다.
출발점은 국민계정의 생산경계입니다. 무급 가사·돌봄노동이 GDP에서 빠져 있다는 문제 제기(Waring 1988)에서 시작해, 폴브레는 돌봄이 관계적이고 대체 불가능하며 생산성을 높이면 질이 떨어지는 성격을 갖는다고 정리했습니다. 시장 논리로 조직하면 실패하는 영역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돌봄 페널티 — 돌봄직 종사자의 체계적 임금 불이익 — 개념이 나옵니다.
엘슨의 3R(인식·축소·재분배)은 정책 언어로 정착했고, 프레이저는 자본주의가 사회적 재생산에 의존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잠식한다는 '돌봄의 위기'를 논합니다.
SSE에 대한 비판은 직설적입니다. 국가가 복지를 축소하고 그 자리를 SSE가 메우면, 결국 여성의 무급 또는 저임 노동으로 채워진다는 것. UN 브리프가 "SSE에 여성 참여가 활발해 임파워먼트 효과가 있다"고 쓴 대목을, 페미니스트 경제학은 "여성에게 부담이 전가된 결과일 수도 있다"고 되받습니다. 같은 사실의 두 해석이고, 브리프는 한쪽만 씁니다.
마이크로파이낸스에 대해서도 같은 각도의 비판이 있습니다. 여성 대상 대출이 여성의 부채 부담과 시간 빈곤을 늘렸다는 방글라데시 현장 연구(Karim)가 대표적입니다.
생각해 볼 점
동형화로 기존 논문을 다시 읽을 수 있습니다. 2023년 「서민금융기관의 부동산담보대출 증가가 경영성과에 미치는 영향」은 실증적으로는 담보대출 비중과 수익성의 관계를 본 논문이지만, 이론적으로는 협동조합 금융이 상업은행과 동형화되는 과정의 측정입니다. 이렇게 프레이밍하면 국내 실증 논문이 국제 조직이론 담론에 접속합니다. 수도권/비수도권의 상반된 결과는 동형화 압력이 지역별로 다르게 작동한다는 증거가 되고요.
노스의 공식/비공식 제도 구분이 PAP의 이론적 근거입니다. 지금 PAP를 "법과 실행의 격차"로 설명하셨는데, 이걸 노스의 언어로 쓰면 공식 제도의 도입과 비공식 규범의 부재 사이의 간극이 되어 개발경제학 저널의 심사자가 익숙한 프레임이 됩니다.
사회적자본은 관계형금융 연구의 이론적 뒷받침이자 경계입니다. 2016년 「비재무적 정보는 중요한가」의 부정적 결과 — 현 수준의 비재무정보가 CB등급 이상의 예측력이 없다 — 는 사회자본을 신용정보로 전환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명제로 읽을 수 있습니다. 순환논증 비판을 피하려면 이렇게 측정 가능한 형태로 좁히는 게 오히려 강점이 됩니다.
돌봄 차원은 PAP 설계에 넣을 여지가 있습니다. PSPS 동문 다수가 보건·농업·지방행정 공무원이라면, 금융포용 문항에 여성의 시간 사용과 돌봄 부담을 묻는 항목을 더할 수 있습니다. 기존 국제 데이터가 비어 있는 영역이고, 젠더 차원이 들어가면 공여기관 관심도도 올라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