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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에너지:

에너지협동조합, 순환경제, 기후위기 대응

왜 에너지가 SSE 영역인가

에너지는 오랫동안 대규모 자본과 국가의 영역이었습니다. 발전소는 크고 비쌌고, 송배전은 자연독점이었으니까요.
재생에너지가 이 전제를 깼습니다. 태양광은 지붕 위에서도 되고, 풍력은 마을 단위로도 가능합니다. 발전의 최소 효율 규모가 작아지면서 시민과 협동조합이 발전사업자가 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에너지협동조합 — 제도가 조직을 결정한다

독일 사례가 가장 명확한 교훈을 줍니다.
2000년 재생에너지법이 도입한 발전차액지원(FIT) 은 20년간 고정가 매입을 보장했습니다. 수익이 예측 가능해지자 시민들이 출자해 발전소를 지을 수 있게 됐고, 에너지협동조합이 900개 가까이 생겨났습니다.
그런데 2014년 이후 경매제로 전환하자 협동조합이 급감했습니다. 경매는 최저가 입찰이라 규모의 경제와 입찰 역량이 필요한데, 소규모 협동조합은 경쟁할 수 없었습니다.
같은 나라, 같은 조직 형태인데 제도가 바뀌자 결과가 뒤집혔습니다. 앞서 여러 번 다룬 명제 — 조직 형태의 성패는 그것을 떠받치는 제도에 달렸다 — 의 가장 깨끗한 사례입니다.
덴마크는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미델그룬덴 해상풍력의 절반을 8,500명의 협동조합이 소유하고, 신규 풍력의 일정 지분을 지역 주민에게 제공하도록 의무화했습니다. 소유를 법으로 나눈 것이죠.
EU는 이를 제도화했습니다. 2018년 재생에너지지침(RED II)이 재생에너지공동체를, 2019년 전력시장지침이 시민에너지공동체를 법적 주체로 인정했고, 회원국에 이들이 시장에 참여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할 의무를 지웠습니다.

한국 — RPS 체제의 구조적 불리함

한국은 FIT가 아니라 RPS를 택했습니다.
500MW 이상 발전사업자에게 일정 비율을 신재생에너지로 공급하도록 의무화하고, 그 이행을 REC(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 거래로 처리하는 방식입니다.
이 설계가 시민 참여를 구조적으로 제약합니다. REC 가격이 시장에서 변동하므로 수익이 불확실하고, 20년 회수 기간의 투자를 감당해야 하는 소규모 협동조합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위험입니다. 독일이 FIT 시기에 협동조합이 번성한 이유가 정확히 이 불확실성의 제거였는데, 한국은 그것을 주지 않았습니다.
보완 장치는 있습니다. 2018년 도입된 한국형 FIT가 소규모 태양광에 고정가격계약을 제공하고, 주민참여형 발전사업에 REC 가중치를 우대합니다. 2023년 제정된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 도 지역 단위 에너지 체계의 근거를 마련했습니다.
그럼에도 규모는 작습니다. 시민발전 협동조합들이 이종협동조합연합회를 만들어 12년째 활동하고 있고, 수원 지역만 해도 경기에너지협동조합·수원시민햇빛발전사회적협동조합 등이 공공기관 옥상과 주차장에 발전소를 세우고 있지만, 전체 재생에너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합니다.
참고로 이 연합회가 '이종협동조합연합회' 형태라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앞서 다룬 2020년 협동조합기본법 개정으로 서로 다른 유형의 협동조합이 연합할 수 있게 되면서 가능해진 조직 형태이고, 규모화 딜레마에 대한 한국적 응답이기도 합니다.

순환경제 — 노동집약적이라는 것이 기회다

「순환경제사회 전환 촉진법」이 2024년 시행되며 자원순환 정책이 재편됐습니다. 그런데 SSE 관점에서 주목할 점은 따로 있습니다.
재사용·수리·선별은 자동화가 어렵고 노동집약적입니다. 앞서 다룬 보몰의 비용병이 여기서는 오히려 장점이 됩니다 — 고용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순환경제와 노동통합이 자연스럽게 결합합니다. 아름다운가게와 굿윌스토어 같은 재사용 매장, 수리 카페, 자원순환 사회적기업이 그 형태입니다. 앞서 다룬 WISE의 유력한 업종이기도 합니다.
국제적으로 가장 발전한 사례는 브라질입니다. 폐기물 수집 노동자(catadores)들이 협동조합을 만들어 시 정부와 계약을 맺고 선별·재활용을 담당합니다. 앞서 UN 브리프에서 본 브라질 연대경제의 대표 사례이자, 비공식 노동을 조직화해 공식 부문으로 편입시킨 모델입니다.
한국에도 대응 집단이 있습니다 — 폐지 수집 노인입니다. 그러나 협동조합으로 조직된 사례는 드물고, 대부분 개별적으로 고물상과 거래합니다. 앞서 다룬 노인 돌봄 문제와 겹치는 집단이기도 합니다.

기후위기 — 전환의 분배 문제

정의로운 전환이 핵심 개념입니다. ILO 가이드라인(2015)과 파리협정 전문에 담겼고, 한국은 2021년 탄소중립기본법에 명시했습니다. 석탄화력 폐쇄 지역의 노동자와 지역경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죠.
에너지 빈곤도 중요합니다. 소득 대비 에너지 비용이 과다한 상태를 뜻하고, 한국은 에너지바우처 등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주목할 것은 이것이 금융 배제와 구조가 같다는 점입니다. 필수 서비스에 대한 접근이 소득에 따라 갈리고, 접근하지 못하면 다른 불이익이 누적됩니다. 금융포용지수를 만드셨듯 에너지포용지수도 같은 방법으로 구성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에너지 전환이 역진적일 수 있습니다. 태양광은 지붕이 있어야 설치하니 자가 소유자만 혜택을 보고, 세입자는 배제됩니다. 전기요금이 오르면 저소득층 부담이 커지고요. 에너지협동조합은 이 역진성을 완화하는 장치로서 의미를 갖습니다.

이론 — 오스트롬의 다중심 거버넌스

대기는 전형적인 글로벌 커먼즈입니다. 배제할 수 없고 경합적이죠.
오스트롬은 말년에 다중심 거버넌스(polycentric governance) 를 제안했습니다. 글로벌 협약이 타결되기를 기다리지 말고 도시·지역·국가·국제의 여러 층위에서 동시에 행동하라는 것입니다.
이는 앞서 다룬 여덟 번째 설계원리 — 중층적 조직 — 의 기후 적용입니다. 그리고 에너지협동조합이 그 최하층을 이룹니다.

생각해 볼 점

첫째 — 에너지협동조합의 자금조달이 보증 문제입니다.
발전소 건설은 초기 투자가 크고 회수 기간이 20년입니다. 앞서 사회주택에서 본 것과 완전히 같은 구조죠. 조합원 출자만으로는 부족하고, 담보가 될 자산은 발전설비뿐이며, 수익은 REC 가격에 따라 변동합니다.
"REC 가격 변동 위험을 누가 흡수할 것인가" 는 금융 설계 문제입니다. 독일이 FIT로 이 위험을 제거했다면, 한국에서는 보증이나 가격 헤지가 그 역할을 대신해야 합니다. 이는 2024년 문화산업완성보증에서 다루신 문제 — 불확실한 수익에 대한 보증 설계 — 와 같은 종류입니다.
둘째, 2022년 기후경제 연구 경험이 있습니다. 한국세라믹연구원의 「도자산업이 기후경제에 미치는 영향」 용역을 수행하셨습니다. 산업의 기후 전환 영향을 분석하는 작업이고, 이는 정의로운 전환의 실증 도구입니다. 2017년 도자산업 파급효과 연구와 함께 보면, 산업연관분석으로 전환의 지역별·산업별 충격을 추정하는 접근이 이미 손에 있습니다.
셋째, 에너지 빈곤 지수를 만들 수 있습니다. 금융포용지수 구축 경험이 그대로 적용되고, 시군구 단위 12년 패널에 에너지 소비·소득·주거 형태를 결합하면 금융 배제와 에너지 배제가 같은 지역에 겹치는가를 볼 수 있습니다. 겹친다면 복합적 배제라는 개념이 성립하고, 이는 국제 문헌에서도 활발한 주제입니다.
넷째, 지역 자금순환 관점이 적용됩니다. 앞서 다룬 누출 개념으로 보면, 외지 자본이 지역에 발전소를 세우면 수익이 역외로 나갑니다. 반대로 주민이 소유하면 지역에 남고요. 덴마크가 지분 참여를 의무화한 이유가 이것입니다. 주민참여형 발전사업의 지역 승수효과는 산업연관분석으로 추정 가능하고, 국내에 연구가 없습니다.
다섯째, PSPS에서 가장 실용적인 주제일 수 있습니다.
개도국에서 에너지 접근(SDG 7)은 절박한 문제이고, 여기서 PAYGO 태양광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가정용 태양광 시스템을 선불형 모바일 결제로 나눠 내는 방식으로, 마이크로파이낸스와 에너지가 결합한 모델입니다. 케냐·탄자니아·나이지리아에서 수백만 가구가 이용하고 있고요.
소액금융, 신용위험, 대안 신용평가(결제 이력이 곧 신용 데이터), 그리고 에너지 접근이 한 사업 모델에 들어 있습니다. PSPS 동문 국가 상당수가 해당되고, PAP 문항으로 "귀하의 나라에서 가정용 태양광 금융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물으면 기존 국제 데이터에 없는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