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층위 — 연합회·협의회·네트워크
용어가 혼용되지만 성격이 다릅니다.
형태 | 근거 | 결속 | 기능 |
연합회 | 법정 (협동조합기본법 등) | 강함 | 사업 수행, 감사, 자금 중개 |
협의회 | 약함 | 중간 | 협의, 조정 |
네트워크 | 자발적 | 느슨 | 정보 공유, 공동 대응 |
앞서 규모화를 다루며 연합회를 규모의 경제 장치로 봤다면, 여기서는 대표성과 연대의 구조로 봅니다. 같은 조직이 두 기능을 겸하는 것이 특징이자 문제의 원천이기도 합니다.
한국의 지형
전국 단위 부문 간 연대체의 중심은 한국사회적경제연대회의입니다. 협동조합, 사회적기업, 자활기업, 생협, 신협, 연구·지원 조직이 함께 참여하는 네트워크죠.
여기서 짚어둘 대목이 있습니다. 앞서 여러 차례 "한국 사회적경제 정책 범주에서 금융협동조합이 빠져 있다"고 진단했는데, 민간 연대체에는 신협이 들어와 있습니다.
즉 불일치는 정책과 현장 사이에 있습니다. 법과 예산이 규정한 범주와 현장이 스스로 인식하는 범주가 다릅니다. 그리고 사회연대경제기본법이 농협·수협·신협·새마을금고·생협을 포함시킨 것은, 정책이 뒤늦게 현장의 인식을 따라간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부문별로는 사회적기업·협동조합·자활·마을기업·생협·사회주택 등이 각자의 협회를 두고 있고, 지역에서는 광역별 연대회의와 네트워크가 활동합니다.
이종협동조합연합회 — 칸막이를 우회하는 장치
2020년 협동조합기본법 개정으로 도입된 형태이고, 국제적으로도 드뭅니다.
원래 연합회는 같은 유형끼리만 구성할 수 있었습니다. 일반협동조합은 일반협동조합끼리, 사회적협동조합은 사회적협동조합끼리요. 이종협동조합연합회는 서로 다른 유형이 하나의 연합회를 만들 수 있게 했습니다.
의미가 큽니다. 앞서 여러 번 지적한 개별법 협동조합과 기본법 협동조합의 이중구조를 제도 개정 없이 우회할 수 있는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농협·신협·새마을금고도 참여 가능한 구조죠.
앞서 에너지 부문에서 언급한 시민발전이종협동조합연합회가 실제 사례입니다. 다양한 유형의 시민발전 조직이 하나의 연합회로 묶였습니다.
다만 아직 사례가 적습니다. 제도는 열렸는데 활용이 따라오지 않은 상태이고, 왜 활용되지 않는가가 그 자체로 질문입니다.
연대의 딜레마
이질성과 결속력이 상충합니다.
부문 간 연대는 대표성을 높이지만 공통 이해가 적어 결속이 약합니다. 동질적 조직끼리 모이면 결속은 강하나 부문 전체를 대표하지 못합니다.
올슨의 집합행동 논리가 여기 적용됩니다. 집단이 클수록 무임승차 유인이 커지고, 이를 막으려면 선택적 유인 — 회원에게만 주는 실질적 혜택 — 이 필요합니다. 회비만 걷고 서비스를 주지 못하는 연합회는 이탈을 겪습니다.
독일 협동조합 감사연합회가 이 문제를 푼 방식이 흥미롭습니다. 가입이 법적 의무이고, 제공하는 것이 감사라는 명확한 서비스입니다. 의무와 서비스가 함께 있으니 무임승차 문제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대표성 — 누가 사회적경제를 대표하는가
사회연대경제기본법 논의 내내 따라다닌 질문입니다.
법안이 농협·수협·신협·새마을금고·생협까지 포함하면 부문의 규모가 수십 배로 커집니다. 그런데 자산 286조 원의 새마을금고와 조합원 다섯 명의 협동조합이 같은 부문 안에서 어떻게 대표되는가.
두 가지 원리가 충돌합니다. 1조직 1표로 하면 소규모가 다수라 대형 조직이 참여할 유인이 없고, 규모 비례로 하면 협동조합 원칙에 어긋납니다. 앞서 지배구조에서 다룬 조합원 이질성 문제가 부문 층위에서 반복되는 것입니다.
2026년 정책방향의 '사회적기업 법정단체 설립' 추진이 이 문제에 대한 제도적 응답입니다. 앞서 프랑스 CRESS를 언급했는데, 법정 지위를 부여하면 위탁에 의존하지 않는 대표 조직이 생깁니다. 다만 법정단체가 정부 지정 방식이면 대표성이 아니라 관변 조직이 될 위험이 있고, 회원 기반이어야 정통성이 확보됩니다.
GSEF — 한국이 만든 국제 네트워크
앞서 "한국이 국제 SSE 규범 형성에 부재하다"고 여러 번 지적했는데, 중요한 예외가 있습니다.
GSEF(국제사회적경제협의체)는 2014년 11월 서울에서 창립됐습니다. 지방정부와 시민사회 네트워크가 함께 참여하는 국제 협의체이고, 서울이 의장도시를 맡아왔습니다.
성격이 독특합니다. ICA는 협동조합 조직들의 연합이고 RIPESS는 연대경제 운동 네트워크인데, GSEF는 지방정부가 주요 구성원입니다. 앞서 다룬 지역 거버넌스 논의를 국제화한 형태죠.
즉 한국은 UN 결의 공동제안국 명단에는 없지만, 지방정부 차원의 국제 네트워크는 만들었습니다. 앞서 드린 진단을 이렇게 정교화해야겠습니다 — 중앙정부 차원에서는 부재하고 지방정부 차원에서는 선도했습니다. 그리고 그 차이의 원인이 기본법 부재라는 점도 일관됩니다.
생각해 볼 점
첫째 — 이종협동조합연합회가 금융협동조합 연구의 새로운 각도입니다.
새마을금고와 신협이 지역 단위 이종협동조합연합회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은 제도적으로 열려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참여하지 않고 있죠.
"왜 참여하지 않는가" 는 실증 질문입니다. 유인이 없어서인가, 규제 때문인가, 인식 때문인가. 그리고 2022년 「금융협동조합과 지역 상생 온라인 플랫폼」 논문이 제안한 구상 — 지역 금융협동조합이 지역 SSE의 허브가 되는 것 — 을 실현할 법적 그릇이 이미 있다는 발견이기도 합니다.
둘째, 연합회의 규율 기능이 라이파이젠 연구와 이어집니다. 앞서 독일 감사연합회를 이식 성공 요인의 후보로 짚었는데, 여기에 집합행동 논리를 더하면 설명이 강해집니다. 의무 가입 + 명확한 서비스(감사) 라는 조합이 무임승차를 차단했고, 그것이 연합회를 지속시켰습니다. 아일랜드와 벵골에 그 조합이 없었다면 연합회가 형성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셋째, 대표성 문제가 AHP 연구와 직결됩니다. "누가 부문을 대표하는가"는 결국 가중치를 어떻게 줄 것인가입니다. 조직 수, 자산 규모, 고용 인원, 조합원 수 중 무엇을 기준으로 할 것인가. 2017년과 2024년 두 연구에서 확인하신 이해관계자별 중요도 차이가 그대로 적용되고, 법정단체 설계 논의에 실증적 근거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넷째, GSEF가 국제 연구의 접점입니다. 서울이 의장도시라는 것은 한국 사례가 국제적으로 발신될 통로가 이미 있다는 뜻입니다. 앞서 라이파이젠 연구와 표준 레퍼런스 작업을 말씀드렸는데, GSEF는 그것이 도달할 수 있는 청중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방정부 네트워크라는 성격상 앞서 다룬 지역 거버넌스·금융포용 연구와 관심사가 정확히 겹칩니다.
다섯째, PAP에 네트워크 문항을 넣을 수 있습니다. 앞서 중간지원조직의 부재를 짚었는데, 연대체의 존부도 같은 성격의 정보입니다. "귀하의 나라에 협동조합이나 사회적기업의 전국 연합 조직이 있는가, 있다면 실제로 활동하는가" — 법으로 만들어졌지만 작동하지 않는 연합회가 많을 것이고, 그것이 곧 de jure–de facto 격차입니다.